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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 그레고르와 벌레가 된 그레고르_ 조현정의 시대공감(7)
 

첫 문장만으로도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강렬한 소설을 꼽으라고 한다면 카프카의 <변신>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깨어난 그레고르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런 설명도 과정도 없이 주인공이 벌레가 되었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잠에서 깨어 벌레가 된 자신을 보면서 회사에 지각을 할까 봐 걱정한다. 자신의 존재 보다 자신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레고르는 파산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한 가정의 가장으로 열심히 일해왔다. 집을 사고 동생을 공부시키고 부모님을 부양했다. 가족들은 그레고르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레고르에게 가족들의 기대는 부담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기회도 되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존재감은 그의 존재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역할에서 나온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레고르는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에게 그레고르의 존재가치는 ‘쓸모’에 따라 매겨진다. 벌레가 되기 이전 세일즈맨이었던 그레고르는 집안의 기둥이자 희망이었다. 그러나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더 이상 본인이 해 왔던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집안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한다. ‘쓸모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는 속된 말로 ‘돈 되는 것’이다. 그 동안 가정에 돈을 가져다 준 그레고르는 착하고 좋은 아들이자 오빠였다. 그러나 돈을 더 이상 가져다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돈이 드는 그레고르는 쓸모 없는 존재다. 이익을 추구하는 경쟁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조차 ‘쓸모’에 따라 가치를 평가 받게 된 그레고르에게 세상은 부조리 할 수밖에 없다.
소설이 나온 지 100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레고르와 그의 가족들은 우리들 가운데 있다. 오히려 100년 전에 비해 더욱 많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을 위해 생업전선에 뛰어 들어 몸값을 올리는 데 여념이 없는 어른들은 ‘세일즈맨 그레고르’다. 다시 말하지만 ‘세일즈맨 그레고르’는 ‘쓸모 있는 사람’이고, ‘쓸모 있는 사람’이란 ‘돈 되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몸값에 따라 자존감이 달라진다. 연봉 30만불을 받는 그레고르와 3만불을 받는 그레고르의 존재가치는 열 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한 순간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될 수 있다. 불경기로 인한 정리해고, 아니면 불의의 사고를 통한 장애, 질병 등으로 어느 한 순간 벌레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입시경쟁에 놓인 아이들은 미래의 ‘세일즈맨 그레고르’다. 자녀들을 ‘돈 되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부모들의 열망이 입시경쟁을 더욱 부추긴다. 캐나다는 한국에 비해 이런 현상이 적다고 하지만 캐나다의 한인사회는 여전히 한국을 닮아 있다. 좋은 대학, 돈 되는 전공에 진학한 아이들은 가족의 자랑이다. 곧 ‘쓸모 있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존재 다시 말해 돈 되는 존재가 되면 세상이 바뀐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다. 그를 자랑스러워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이와 같이 쓸모 있는 이들의 영광이 클수록 쓸모 없는 이들, 실패한 이들의 그림자는 짙다. 실패한 그들에게도 세상이 바뀐다. 그러나 이들에게 바뀐 세상은 앞서 말한 돈 되는 존재들이 누리는 친절한 세상과 반대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무관심하거나 냉랭하다. 주위 사람들이나 가족마저 그들의 존재를 알리기를 꺼려한다. ‘세일즈맨 그레고르’가 되느냐,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되느냐에 따라 같은 공간에 살아도 사는 세계가 다른 것이다. 누구보다 이러한 현실을 잘 아는 부모들은 자녀의 성공을 위해 목을 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사회와 가정을 너머 교회에서도 발견 된다. 모 장로, 모 집사의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좋은 자리에 취직하게 되면 목사가 공적인 예배시간에 자랑스레 알리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떠든다. 그러나 경쟁률이 높을수록 진학에 실패하고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훨씬 많다는 것은 모르는 듯하다. 교회 목사가 성공한 학생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을수록 같은 교회에서 실패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과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마치 신의 사랑에 차별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쓸모 있고 돈 되는 친구들은 하나님의 사랑도 더 받고, 쓸모 없고 돈 안 되는 친구들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소외되는 것처럼 보인다.
성경에서는 그 사람의 쓸모에 따라 존재가치가 결정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각자 고유하게 존재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그것이 건강한 사람이건, 장애인이건,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돈이 되는 사람이건, 돈이 드는 사람이건 신 앞에서는 공평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능력이나 쓸모를 보고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는 사랑과 은혜로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쓸모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면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모르는 자다. 참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벌레가 된 그레고르’였을 때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 사랑을 다른 그레고르에게 베풀고 전하는 자들이다. 그 사랑이 쓸모 없는 자를 쓸모 있는 자로 변화 시킨다고 믿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쓸모’는 ‘돈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것을 말한다. 그래서 참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는 소설처럼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


캘거리한인연합교회 전도사 조현정 kier3605@gmail.com
교회홈페이지: http://www.kucc.org

기사 등록일: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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