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요즘 와서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옛날에는 농가를 위한 가축병원이던 것이 지금은 애완견 병원이랄 만치 흔한 곳곳의 동물병원만 보더라도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옛부터 달라지지 않은 한 가지는 개사랑만큼 보신탕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개고기의 몸보신에 관한 한 누가 누구를 상관하고 따질 일은 아니지만, 요새는 아무도 영양실조로 허약해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습니다.
우리는 영양실조가 아니라 오히려 정서실조를 걱정해야 합니다. 매일같이 소고기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별스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은, 소는 개와 달라 옛날 쟁기질이나 시키면 되던 것이 그런 일이 없어진 지금은 잡아먹는 고기쯤으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족탕에서 꼬리곰탕용까지 하나하나 토막쳐 냉동고 속에 넣어두고 또 가죽은 발가 벗겨 허리띠로 두르고 다녀도 되는 것이지만, 개만은 그럴 수 없다는 억지를 도덕적 문제로 담판짓기는 어렵겠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 입을 즐겁게 하는데 매우 실질적이면서도 동시에 감정적이지는 못합니다. 타고난 문화, 생활이나 필요성이 사람을 서로 다르게 합니다.
우리는 북미인이나 서구인과 다릅니다. 식생활의 기호가 다르고 감정반응이 또한 다릅니다. 어느 사회에서 어느 동물이 사람과 좀 더 가깝다하여 차등하는 문제이거나, 인간 생존을 위하여서는 살생이 불가피하다는 아이러니이거나 모두 다 풀기 어려운 문제로 남습니다.
개고기만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개고기를 탓하려면 소고기도 문제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만한 도시의 영양공급을 위해 도살장 울에 갇혀 목숨 내걸고 울부짖는 ‘개새끼’들을 보고는 원칙에 앞서 우선 감정적 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정서불감증은 너무 익숙해져서 생기는 증세입니다.
편집자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7년 2/9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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