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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캐나디언 부인 _ 이희라 (캘거리 문협)
차라리 한국의 불볕더위가 더 나았던 것 같다. 두 달 만에 캘거리 공항에 내렸을 때 잿빛 하늘에서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건듯 부는 바람에도 나뭇잎들이 빗물과 함께 쏟아져 땅 위에 눕고 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혼자 남으신 어머니의 모습이 나를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었고, 낮은 기온과 함께 혹독한 몸살 기운이 스멀스멀 몸을 점령하고 있었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우편물을 꺼내가던 앞집 부인을 만났다. 아버지의 소식을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는지 위로의 말을 건넨다. 순간 얼었던 몸이 풀리는 듯했다. 언제나 따뜻하고 편안한 앞집 부인이다.
이민을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앞집 캐나디언 부인이 추수감사절이라고 가까운 이웃들을 초대했었다. 거실 벽의 박제로 된 커다란 엘크의 머리와 수많은 음반과 오디오가 인상적이었고, 고풍스러운 의자들이 색깔과 크기가 다른데도 신기하게 잘 어울렸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정성스레 준비된 다과들이 식탁에 잘 차려져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 집 텔레비전 때문이었는데 어렸을 때 봤던 나무 케이스에 넣고 여닫이 문이 달린 아주 오래된 14인치였다. 그런데 그 초라한 텔레비전이 오히려 그 집 주인을 더욱 멋지고 품격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 후부터 부인의 검소하고 우아함을 늘 머릿속에 간직하면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지냈다.
얼마 후 시어머니께서 이곳 캐나다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게 되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앞마당의 화단을 정리하고 계시는데 앞집 부인이 뛰어왔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반갑게 안아드리며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외국 여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너무나 반갑게 인사를 하니, 어머니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소녀처럼 당황해 하셨다.
그날 이후 그 부인은 자기 꽃밭에 있는 꽃들도 옮겨 심으라고 가져오고, 꽃 축제가 있으니 어머님과 가보라며 안내책자도 들고 왔다. 화분, 소나무 묘목, 꽃씨, 강아지 장난감들까지도……. 아침마다 그 부인의 맑고 고운 인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자주 자기네 집으로 모시고 가기도 했다. 어머니와 그 부인은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데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는지 신기했다. 주로 화단에 있는 꽃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어머님은 한국말로 대답을 하셨다. 어느 날은 이것저것 잔뜩 얻어 오셔서는 “빨리 심어야 한다더라.” 하셔서 우리들이 한바탕 웃은 적도 있었다.
나와 남편은 그런 부인의 모습을 보면서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참 좋은 사람이라며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오래 흐른 후 그 부인이 어느 날 차를 마시면서 하는 말이 어머니를 처음 뵈었을 때 돌아가신 자기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는 거였다. 처음 어머니께 인사를 드릴 때 당황해 하셨던 것도 기억한다고 했고, 그때 어머니를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하다고도 했다. 자신의 어머니 생각이 너무도 많이 나서 반가움에 실례를 범했다고 한다. ‘아, 그랬었구나!’ 그때서야 부인이 어머니께 왜 그리 친절했었는지 알게 되었다.
캐나디언들은 효도하는 마음이 우리보다 훨씬 덜 할 거라는 생각을 바꿔주고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많이 하게 해준 캐나디언 부인……. 나도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뵙고 싶어도 다시는 뵙지 못하는, 이별의 아픔을 이번 여름에 뼈아프게 겪었고 한국을 떠나올 때 나를 보내던 친정어머니의 눈빛이, 예전에 나를 보내시던 아버지의 눈빛과 너무도 닮아서 두렵고 가슴이 저렸었다.
시애틀을 경유하여 돌아오는 공항에서 휠체어를 타고 계시는 한국, 캐나디언 할머니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얼굴과 모습들이 하나같이 친정어머니와 닮아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때 앞집 부인이 우리 시어머니께 대하던 모습이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그분들에게 미소와 함께 눈인사를 드렸다.
지금도 앞집 부인은 차를 몰고 나가다가 차창 너머로 우리 어머니와 나에게 인사를 하며 손을 크게 흔들고 간다. 문득 앞집 부인을 떠오르게 하는 마더 데레사의 말이 생각나서 적어 본다.


어떤 사람이든지 당신을 만나고 나면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지게 하세요.
신의 사랑이 당신을 통해 표현되도록 하세요.
당신의 얼굴에, 당신의 눈에, 당신의 미소 속에,
그리고 당신의 따뜻한 말 한 마디 속에……

기사 등록일: 200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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