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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수배 - 최우일 칼럼
 
“제가 도와 드리면 꼭 찾을 수 있습니다. 보장합니다.”
내가 내민 인상착의는 보나마나 누굴 추적하고 있는지 다 짐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흥정을 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지쳐있어 누군가의 전문안내가 간절하였을 때이었습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난 ‘장’이라고 합니다. 같이 잘 해봅시다” 그 후로부터 그는 ‘짱’으로 통했습니다.
한 때는 나도 짱같은 이들이 하는 일에 뜻을 두어본적이 있습니다. 주위에서도 내게 그런 기대를 하고있었고, 어느 단체에서는 준비교육 경비를 주선해 주기까지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에 부응 할 수가 없었던 것은 나는 조직 속에서 내가 할 역할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출발점이 불분명한 시작으로는 당당할 수 없다고 믿었었습니다.
짱은 어쩔줄 모르고 있던 내게 접근하여 서슴없이 안내역을 떠맡고 나섰습니다. 조직의 대표격인 그는 외국에까지와서 무슨 굉장한 훈련을 받고 나서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처져 남은것은, 나 같은 황당한 인간들 때문이라고 아주 공공연하였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급한 형편이었기에 누구도 그의 진심을 문제 삼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수배자를 추적하여 현상을 타내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현상에 동요된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이해하려 했습니다. 힘겨운 이 세상에서 바랄 것이 또 무엇이겠는가고 동정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남들처럼 쉽사리 현상에 현혹 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찾고있는 그분만이 채워줄 수 있는, 나의<가슴에 뻥 뚤려남은 빈 자리>를 그냥 남겨둔 채로는 지금 당장 삶의 의미를 가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찾아 만난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아예 포기할뻔도, 몇번인가는 그분을 부인까지도 하였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나는 정말 아슬아슬한 사람이었습니다.
“난 이미 오래전에 그분을 만났고 믿음을 얻었다니까요. 믿거나 말거나…..,늘 그분과 함께 합니다. 그분이 자기를 찾는 사람에게 약속한 현상은…..” 짱은 우리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거리기도 얼리기도 하면서, 그는 조직의 정당성이나 비영리성을 간간히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불어나는 살림으로 불가피한 큰 건물의 필요를 내세우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또 다른 요구로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건 누굴 탓 할 일만은 아닌 것이 우린 하나같이 ‘좀더’ ‘더 큰’ 것에의 욕심을 감추고 있었으니까요.
한국에는 전세계에 유례없는 초대형교회가 여러개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살림이 워낙 엄청나서 그런가, 후계자문제를 놓고 별별 소리가 다 들립니다. 남에게 거저 내주기 아까운가 봅니다. 집안끼리 물려하는 세습까지도 불사하는가 하면, 심지어 양도 권리금 얘기도 나돌고 있습니다. 나는 짱이 이렇게까지 큰일날 일을 도모할 인물로는 보지않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진작에 파다한 소문이니 그도 눈치쯤은 채고있을 것입니다.
<어느 곳에 잘 지은 호화판 교회가 하나 있었다. 사뭇 으리으리한 그 교회 앞을 남루한 품팔이가 지나치게 되었다. ‘아! 여긴 천당이야’ 이렇게 생각한 그는 문을 들어섰다. 목사를 만나 신도가 되겠다고 하였다. ‘아! 당신이 여기 신도가 되겠다고? 집에 돌아가 하느님께 기도하시오. 주님의 응답이 있거든 그때 찾아오시오.’ 그리고서 목사는 사내의 등을 떠밀어냈다. 그것으로 귀찮은 일이 다 끝난 줄 안 목사에게 얼마 후 그 사내가 다시 찾아 왔다. 김열규씨의 어느 책에 있는 이 욕찌거리 한 마당을 여기 옮겨놓은 까닭은, 욕먹어 싼 인간들에게 겨냥한 바로 우리들의 못마땅한 심기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해서입니다. 욕은 사람 속을 이리도 후련하게하여 주니 때때로 참 쓸만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어디까지나 내용이어야지 형식이 되어버리면 그 분은 떠나버리고 맙니다. 하느님 없는 빈 교회, 겉치례만 있고 알맹이 빠진 교회, 번듯한 건물에 퍽이나 많은 식구라고 다가 아닙니다. <교회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는 제도나 조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뜻이다. 하느님이 교회라는 형태를 취해 나타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형식이 내용으로 자칫 오해되면 여러가지 폐해가 일어나게 된다.> 여기서 무교회주의자들이 말하는 교회란, 건물을 두고서 한 말이 아닙니다. 어쨋거나 복음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임으로서나 공간으로서나 교회란 있기는 해야하지만……,
2004년 4월19일자 딴지일보에 실린 어느 미국교포의 글을 좀 보십시요. <…….오늘날 기독교는 교회부터 짓고 있습니다. 이 조그마한 오클랜드 교민 2만명에 교회만 100여개가 넘습니다.> 그렇다면 유학생까지 합쳐 1만명을 밑도는 캘거리에 20개도 채 않되는 교회는 결코 많은 것이 아니라고 믿어야 겠지요? 한편 2004년 4월22일자 동아일보는 <담임목사도 성전도 간판도 없는…..> 이런 제목으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강당 출입구에 붙여진 A4용지에 ‘산울교회’라고 씌여있다………이 교회는 간판도 없이 한 대학재단 소유의 건물강당을 일요일마다 빌려쓰고 있다. 교회는 1998년 소설가 조성기씨를 비롯한 동역자들이 교회의 대형화 성전화 추세에 의문을 갖고 소 그룹단위의 인격적 만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습니다. <없는 것이 많은 교회, 그래서 더 꽉 차 보이는 교회였다.> 함석헌씨 등이 무교회사상을 일본에서 가져올 당시의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아주 힘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족의식이 절실할 때 사람들은 예언적이고 종말론적 사상에 강렬하다………믿음의 씨는 외국에서 들여 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우리 속에서 배양되어야 한다>는 예언과 종말의 개신사상은 우리들에게 절실한 것이었을런지 모르지만, 그래도 ‘남의 종교의 우리 토속화’라는 먼저 되어야 할 과제는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미정돈 시대일수록 종교는 한층 힘을 얻고 퍼져갑니다. 그러나 신앙의 문제에 관한한 그건 객관성이나 보편성에 약한 것이기에 나처럼 따져보고 나서야 다가가는 사람에게는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내가 신앙을 가졌다 말하고 신자임을 자처하기위해서 우선되어야 할 것들이 아직 정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역사성, 행적, 말씀과 약속, 그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에 대하여, 내겐 석연치 않은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렇지만 꼭 짜여진 교회의 틀 속에서는 이런 의문들이 쉽사리 용납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 질문이나 받겠다는 에지몬트 어느 교회에서 ‘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손을 번적 들어버린 내가 바보였습니다. 난 은근히 왕따되면서까지 더는 발걸음을 하고싶지가 않았습니다.
교회라는 모임안에서는 여러 동료 인간들과의 믿음의 교섭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믿음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으로 심득(心得)된 개인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서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을 종용한다는 일은 자신만의 것일 때와는 다릅니다. 대저 하느님의 복음을 <전도한다는 일은 제 분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섣불리 나설 일이 아니다. 자기에게 참인 것은 남들에게도 참이라는 절대적 확신이 앞서야 하고 그래서 자신의 내부생활의 충실함이 넘쳐흘러서 하지않고는 못배길 존엄한 현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그러니 너도 믿어야한다’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모자란다. 보편적 우주의 공도(公道)를 체험한이라야 전도를 할 수가 있다.> ‘구라다 햐구조오’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내 생각을 미리 다 말해버렸습니다.
1960년대, 히피들이 법석을 떨던 토런토, ‘영 스트릿’은 토요일 밤이면 술과 여자와 ‘약’의 광기로 들뜬 지역이었습니다. 뜻을 둔 사람들이 이러한 도심(都深)에서 전도를 했다는 것은 가상한 일입니다. 결국 누구보다 복음이 절실했던 사람들은 바로 이런곳의 이런이들 이었을테니까 말입니다. 어느날인가, 요즘처럼 유행을 따르려던 것은 아니고 의사소통 문제로 빚어진 이발사의 실수(혹은 부실한 내 영어때문인지?)로 불량스럽게 박박깍은 머리를 하고서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내게 누가 쪽지 한 장을 쥐어준 일이 있습니다. 이걸 까맣게 잊고있다가 수십년이나 지난 이제서야 펼쳐봅니다.
<’영 스트릿’은 예수가 숨어 들어 있을 만한 곳이다. 그 분는 천성이 부자를 혐오해서 빈민지역을 배회하고 주로 범죄인이나 과격분자, 거리의 불량배들과 어울린다. 일컬어 사도라고하는 일단의 부관들을 거느린 지하단체의 두목으로 지목되어 수배중인 그분이, 히피들이 몰려있는 ‘다운타운’의 소란 속으로 섞여버린 것으로 예상된다.>
이쯤이면 귀기우려 들을만 합니다. 얘기가 됩니다. 맹목적 권위의 질곡에서의 해방이야말로 건강한 신앙의 출발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분의 용모파기는 이렇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고 수염을 덥수룩하니 헐렁한 옷을 걸치고서 샌들을 끌고 다니는 ‘히피’같은 행색이다. 그분의 본명은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메시아’ 또는 ‘하느님의 아들’, ‘왕중왕’ 따위의 가명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수배혐의는; <무허가 의료행의, 불법 양조, 식품류 무단배포와 유통혐의,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운 난동혐의및 요술같은 기적행위, 등등 이루 다 열거 할 수 없다. 그러나 뭐니해도 제일 미움산 짖은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란 횡설수설이다. 사람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만들어버리는 권능이 있다고 떠들어대기도 한다> 그분은 <결국 기소되고 재판까지 받게 되었다. 지금 세상 같으면야 재판에 설 수 없는 정신상태로 진단될 것이다.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내건 현상, ‘영원한 삶’이란 것도 따지자 들면 기만죄로 몰릴 수도 있다.> 대략 이런 것들이 그 쪽지의 요지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모독하려는 것이 절대로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얼른 들으면 엄청난 험담이나 모략 또는 참고 볼 수만은 없는 모독같이 들릴 수도 있겠다싶지만, 사실 당시의 분위기에 마춘 새로운 선교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종래의 방법으로는 당시의 자유분방한 젊은 이들에게 접근조차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들 거리의 전도사들은 ‘그분의 뜻’에만 충실하고 자신들은 최소한의 생활을 실천합니다. 비싼 건물을 지으려 애쓰지 않습니다. 큰 건물이 없으니 살림 맡을 인원도 필요없고 회비같은게 쓰일 일도 없습니다. 누구처럼 다짜고짜 감투 씌우는 짓도 하지 않습니다. 감투가 없으니 다툴 일도 없고, 노론이니 소론이니, 원주민이니 한국통이니, 교회측근이니 반대파니………그러다가는 한 무더기가 뚝 떨어져나가 분점을 여는 따위 분란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의 ‘영 스트릿’에서는 그때처럼 거리의 히피전도사들을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이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동안 짱과 같이 질긴 이들이 세운 교회당이 번듯하니 늘어서있게 되었다는 현실입니다. 지난 주일날 아침에도 짱이 교회 주차장에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있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서오십시요. 벤츠는 이쪽으로…..어이, 깡통들은 저리 좀 비키라니까!”

편집자 주 : 븐 글은 CN드림 2004년 5/7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기사 등록일: 200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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