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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봄은 온다. _조현정의 시대공감(5)
 

“몇 십만의 인간이 한 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 버렸어도, 그곳에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거슬려 놓았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새들을 모두 쫓아냈어도 봄은 역시 이곳 도시에도 찾아 들었다.”
레프 톨스토이의 ‘부활’의 첫 문장이다. 그리고 이 곳 캘거리의 4월에도 봄이 찾아 왔다. 누군가에게는 죽었던 겨울의 대지를 뚫고 새 생명이 움트는 부활의 계절이 될 것이고,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T.S. 엘리엇이 ‘황무지’라는 시에서 고백한 것처럼 ‘잔인한 계절’이 될 수도 있다. 엘리엇은 오히려 겨울을 따뜻한 계절이라고 말하고 있다. 겨울은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생명을 남겨 주었기 때문이다. 황무지가 발표된 1922년의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겨우 4년 밖에 지나지 않은 해다. 집집마다 다치거나 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쟁의 상처는 컸다. 아직 그 상처가 아물기 전이다. 그래서 엘리엇은 붉은 피의 대지를 잠시나마 눈으로 하얗게 덮어 죽음의 상처를 망각하게 하는 겨울이 따뜻했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큰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상처와 아픔의 자리를 지우지 못한 채 고스란히 마음 한 켠에 간직한다. 고통 가운데 죽어간 사람을 잊는다거나 무뎌지는 것은 죽은 자들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살아서 존재하지 못해도 마음 가운데 존재하는 이를 밀어내버리는 것만 같아 아파도 되새기고 되새기며 살아간다.
그래도 잔인한 봄은 찾아 온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봄이 찾아 온다. 새 생명이 태어나고 노래하고 춤추는 계절이 찾아 든다. 죽었던 것들이 다시 소생하는 부활의 계절이 찾아 온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한 발짝 나가지 않으려 하는 이의 등에도 봄볕이 든다.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죄 많은 네흘류도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카츄샤의 시베리아 유형에 동행한다. 네흘류도프는 고모의 양녀이자 하녀인 카츄샤를 겁탈하고 이를 외면한 체 살아간다. 오랜 시간이 흘러 한 재판의 배심원으로 참여한 네흘류도프는 초췌한 카츄샤가 피고인으로 서 있는 것을 본다. 카츄샤는 오래 전 네흘류도프와 관계 이후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레흘류도프의 고모에게 내쫓기고 태어난 아기도 죽고 만 것이다. 카츄샤는 매춘부로 살다가 살인자라는 누명까지 뒤집어 쓰고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카츄샤의 모든 불행이 자기 때문임을 자책하는 네흘류도프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카츄샤를 따라 시베리아로 간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리니코프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는데 그의 구원자 쏘냐가 동행한다. 사회에 해가 되기만 하는 전당포의 노파를 죽이려고 하다가 백치인 노인의 동생까지 죽이게 된 라스콜리니코프는 죄책감과 자기합리화 사이에서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구원자 쏘냐를 만나면서 자신의 죄를 다 고백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시베리아 유형 길에 오른다. 쏘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라스콜리니코프를 따른다.
'부활'의 네흘류도프와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 두 사람 모두 죽음과 같은 죄책감과 함께 얼어붙은 동토 시베리아로 떠난다. 시베리아에서 두 사람 모두 성경의 복음서를 통해 구원과 부활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진정한 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봄을 맞이 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 자식을 잃은 세월호의 가족들이 그렇고, 살인가스에 자식들을 잃은 시리아의 부모들이 그렇고, 세계 곳곳에 억울하고 외롭고 힘든 이들이 그렇다. 겨울 밤이 끝을 모를 만큼 길고 어두워도, 혹독하게 매섭고 시리더라도 봄은 오고야 만다.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시커멓고 단단한 아스팔트로 땅을 덮어도 그 틈새로 연한 새순이 자란다. 생명이 있으면 죽음이 있겠지만 죽음이 있으면 다시 생명으로 돌아온다. 아픈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 자책과 한숨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에게도 봄이 오기를 기원한다. 큰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겠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기원한다.

캘거리한인연합교회 전도사 조현정 kier3605@gmail.com
교회홈페이지: http://www.kucc.org

기사 등록일: 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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