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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그리스도인 _ 조현정의 시대공감(6)
 
말 하는 입은 많은데 듣는 귀는 적은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홍수같이 쏟아지는 무수한 말들이 사람들의 귀에 다 담기지 못한 채 허공 중에 흩어집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시간은 자신이 다음에 해야 할 말을 생각하는 시간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말을 강하게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로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오만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소위 고상한 사람들이 하는 고상한 말들로는 무엇 하나 바꿀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강하게 말하는 사람 곁으로는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 보다 말 잘 듣는 사람이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모모를 쓴 미하엘 엔데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모모는 부모도 집도 없는 떠돌이 소녀입니다. 마을 변두리에 있는 폐허가 된 원형극장에서 혼자 삽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까지 합니다.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는 꼬마 모모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일까요? 특별한 지식이나 말재간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만 상대방이 진심을 말할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주고, 말할 때에는 경청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치의 양보 없이 다투던 사람들도 모모에게 가서 서로 하소연하다가 결국 문제가 해결 됩니다.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한 소년이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 카나리아 한 마리를 데리고 옵니다. 모모는 그 새가 노래할 때까지 꼬박 일주일을 귀 기울이고 기다립니다. 결국 카나리아는 다시 즐겁게 노래합니다. 책 본문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모모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개, 고양이, 귀뚜라미, 두꺼비, 심지어는 빗줄기와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그들은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모모에게 이야기를 했다.”
모모처럼 잘 듣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사람이든 자연이든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내 보이게 됩니다. 자신의 진솔한 모습 그대로 나아올 때 변화도 가능한 것입니다.
한자로 경청(傾聽)은 기울일 경자에 들을 청자를 씁니다. 나 중심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기울여 공감하고 듣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들을 청(聽)자 에는 귀 이(耳)변에 눈 목(目)과 마음 심(心)자가 같이 있습니다. 즉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을 마주하고 마음으로 듣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잘 말하는 것 이상으로 잘 듣는 것이 어렵습니다.
원래 기독교에서도 잘 듣는 것을 미덕으로 합니다. 성경 로마서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에서 “듣는 것은 속히 하고 말하는 것은 더디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란 먼저 예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말씀이 듣는 귀를 통해 마음 밭에 떨어져야 삼십배, 육십배, 혹은 백배의 수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기독교인들이 듣기보다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를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율법학자, 바리새인, 제사장들과 같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마을 어귀에서 사람들에게 율법을 설파하고 자신의 지혜와 선행을 자랑합니다. 사람들은 종교권력자들인 그들을 두려워하고 형식적으로 따를 뿐 진심으로 그들을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치하의 어려운 환경 속에 말하기만 좋아하는 종교 지도자들 아래에 있는 백성들을 ‘길 잃은 양’이라며 불쌍히 여겼습니다. 반면 말 하기 좋아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엄하게 경고를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잘 듣는 기독교인보다 말하기 좋아하는 기독교인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수준을 너머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말이 무조건 옳다는 확신이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말을 하나님의 생각과 말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부터인가 기독교인 주변에는 기독교인만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기독교인을 꺼려합니다. 듣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말 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잘 듣지 않고 말만 하려는 사람의 마음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내가 너보다 옳고 지혜롭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시간은 내 말을 하기 위해 인내하고 기다리는 시간일 뿐입니다. 반면 잘 듣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의 말을 기울여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듣는 그리스도인은 함부로 가르치거나 판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듣고 공감하려고 합니다. 신과 같이 말하려고 하기 보다 예수의 마음으로 듣는 사람 입니다.

캘거리한인연합교회 전도사 조현정 kier3605@gmail.com
교회홈페이지: http://www.kucc.org

기사 등록일: 2017-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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