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내 슬픔을 등에 업고 갈 자 = 친구 (2편) , 죽산 이정순 (캘거리)
이 녀석은 지난 4월에 밴프가는 길에서 만나 그리즐러 곰 참 순한 녀석이었어요.. 지나가는 차가 서서 사진을 찍어도 도망가지 않았어요. 
곰이 좋아하는열매 레벨스톡 국립공원에 지천에 널려 있는 야생열매 
호수의 보트 정박소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산불로 인한 경고가 스마트폰에 자주 뜨는 바람에 보트를 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동굴온천이 목표였다. 우리의 최고목표인 동굴온천으로 갔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 화요일 문을 닫는다고 했다. 펜데믹 이후 스케줄이 바뀌었단다. 우린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더 묶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다음 예약 장소를 취소해야 하는 게 문제였다.
캠핑 사이트는 3일전에 예약을 취소하지 않으면 환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주중이라 비어있는 캠핑사이트가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음 날 온종일 비가 와서 트레일러 안에서 하루를 보내기에는 아까웠다. 일단 빗속을 뚫고 호수 주변을 드라이브 하기로 하고 나섰다.
그 호수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물가로, 산자락으로 드라이브를 하는 운치는 표현할 수 있는 글 실력이 못됨이 아쉬웠다. 나뭇잎에 맺힌 보석 같은 물방울이며, 간간이 이른 단풍이 든 나뭇잎이며, 잔잔한 호수에 수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예정대로라면 오늘 아침에 출발해야 하는데 온천이 문을 닫는 바람에 하루 더 묶게 되 이런 아름다움을 하나 더 체험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셈이었다.
당연히 열었으려니 생각하고 스케줄을 꼼꼼히 챙기지 못한 우리의 불찰이었지만, 그 또한 그 동안 바쁘게 살아 온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 주었다. 저녁에는 내가 준비해간 LA갈비로 근사한 저녁식사를 하고 고스톱으로 저녁시간을 또 재미있게 보냈다. 작년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 때 배운 고스톱을 요긴하게 써 먹을 줄이야.
또 문제가 발생했다. 루프 탑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본 친구 부부는 자신들이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고 극구 말리며 캠핑트레일러에서 함께 자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저녁 날씨에 루프 탑을 설치하는 아찔한 광경을 나 또한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참고로 가지고 간 인피니티 QX80은 일반 차보다 30cm 정도 더 높았다. 우리 아들도 높아 위험하다고 경고를 했던 참이었다.
남편은 부모님과도 같은 공간에서 기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까다로운 성격이라 평생 처음으로 같은 공간에서 내 피붙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기거한다는 것은 아예 그의 인생 스케줄에 입력되어 있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다하던 남편도 친구의 간곡한(?)애원에 마음을 내려놓고 한 공간을 공유하기로 했다. 다행히 트레일러는 4인용이었다. 그래서 편안한 잠자리에서 나흘을 보냈다. 우린 서로 들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은(코골이, 방귀, 이가는 것까지?ㅋㅋ) 다 공유한 셈이라 더 돈독한 우정을 확인하는 기회가 된 셈이었다. 캠프가 아니면 감히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체험이었다.

23일 가슴 뜨거운 사람끼리
자연의 소리에 아침 일찍 눈이 저절로 떠졌다.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 자연의 냄새 피톤치드 향까지. 그 소리를 듣고, 그 향을 후각으로 느끼고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가슴 뜨거운 감성이 없거나 귀마개를 한 사람이 분명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 일행은 그러한 사람은 없는 듯했다. 우린 오감을 다 체험했다. 그렇게 Ainsworth의 2박을 했다.
남편의 요리 실력을 발휘해서 고급호텔의 아침식사 부럽지 않게 근사하게 먹고, 온천을 다녀와서 바로 출발 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었다. 10시 반 개장시간에 맞춰 일찌감치 동굴온천으로 갔다.
갑자기 하늘에 깜깜한 먹구름이 끼이더니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에 우리는 혼비백산했다. 다행히 금세 천둥번개는 그쳤다. 산발적으로 비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노천 온천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입욕을 하고 있었다.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물에 굵은 빗방울이 왕관을 만드는 그 신비함, 부모님을 따라 온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친구는 이번이 네 번째 오는 온천 여행이라지만 처음 오는 나는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이 이렇게 신비할 수가. 인간의 손이 거치치 않은 천연동굴 온천수. 노상 온천을 거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공간이지만, 천장과 바위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연 그대로의 온천수는 유황과 철분이 섞여 약간의 갈색을 띄었다.
물의 온도는 50정도. 물에 뛰어 들자마자 ‘아, 시원해!’ 아니면 ‘앗 뜨거!’ 하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천장에는 크고 작은 종류석이 아래로 자라고 있었다. 색상도 다양했다. 푸른색을 띈 것, 갈색, 하얀색, 붉은색까지. 그 동굴 안쪽에는 서너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 있는 굴이 있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온천수 온도는 더 따끈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딱 좋아할 만한 그런 굴이 세 개가 있었다. 빗속에서의 노상 온천은 그야말로 운치 그 자체였다. 동굴온천 체험은 최고였다. 원래 촬영이 금지 된 곳인데 남편한테 야단을 맞아가며 몰래 촬영을 했다. 1박 일정을 2박을 하고 나왔는데도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는 네 시간 여를 달려 Fairmont 캠프장에 도착했다. 워낙 길이 험한지라 속력을 낼 수 없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비 온 뒤라 산불로 인한 스모그가 가라 앉아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쾌적했다. 산불을 생각하면 더 많은 비가 내려 주기를 바랐지만,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친구가 준비해온 불고기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나와서 먹는 식사는 둘이 먹다 하나 없어져도 모를 만큼 맛있었다. 매일 이렇게 먹다간 살찌겠다는 타령을 하면서도 젓가락을 멈추지 못했다.
Fairmont Hot spring Resort 또한 온천으로 유명하다. 근처에 래디움 온천이 있어 여러 번 가 보았다. Fairmont은 작년 봄에 캐나다 여류문협 회장을 모시고 온 적이 있었지만, 펜데믹 이후 제한적 개장이라 온천은 하지 못하고 레디움 온천으로 갔던 아쉬움이 남아 있는 곳이다. 내가 동굴 온천이나 패어몬트 온천을 알기 전에는 레디움 온천을 최고로 꼽았던 터라 그 온천도 괜찮았다.
내 남편은 가부장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온천을 워낙 좋아하는 나를 위해 자주 찾아 다녔다. 우리는 타 주에 살았던 터라 BC 주 온천은 그리 자주 와보지 못했다. 패어몬트 또한 유명온천이라 시설이 좋았고, 노천 온천은 아이들이 놀기에 좋게 시설을 해 두었다.
이곳의 하룻밤이 아쉬운 듯했지만, 다음 기회에 다시 오기로 하고, 우리는 두 시간을 운전해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밴프로 출발했다.
밴프는 내가 살고 있는 캘거리 인근에 있어 한 달에 한 두 번은 산행 스케줄로 잡혀 있어 자주 오는 곳이지만, 이번 일정에 추가한 것은 BC주는 산불로 인해 장작불이 금지 되어 있어 할 수 없었다. 캠핑의 절정은 장작불이다. 캠프를 처음 하는 우리를 위해 친구의 꼼꼼한 배려가 너무나 고마웠다.
터널 마운틴 캠핑장에 여장을 풀고 인근에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존슨 레이크 주변을 걸었다.
호수를 끼고 두 시간여 걷는 것은 매주 로키등반을 하는 우리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로키산 정상 정복은 매주 왕복 3만5천보 이상(왕복10~24km. 경사 최고 45도 각도)으로 훈련된 다리다. 곰이 출몰 할 것 같은 깊은 숲은 네 사람 이상 그룹으로 걸으라는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우리 부부는 캐나다에서 23년을 살면서도 이 좋은 곳을 그냥 찍고 가는 식으로 여행을 다녔으며, 호텔에서만 자야 여행인줄 아는 바보였다. 그것을 아는 친구가 이번 여행을 계획한 것이었다.
국립공원에 장작은 무한정 가져다 불을 피울 수 있다. 전부 무료다. (물론 장작 사용료로 10불정도 추가로 낸다)
두 남자는 장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곳으로 가서 욕심껏 싣고 왔다. 어둠이 깔리자 우린 한이 맺힌 것처럼 장작불을 피웠다. 불꽃이 훨훨 타는 것을 바라보며 각자의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각자의 개똥철학도 진실인양 술술 풀어내기도 했다.
한차례 담소가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개껍질 묶어 그녀에 목에 걸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꿈 많던 여고시절로 돌아갔다. 감자를 은박지에 싸서 구웠다. 어릴 때 아궁이에 불을 때고 고구마, 감자, 옥수수를 구워 먹으며 입가가 새까맣게 된 줄도 모르고 먹던 생각이 났던지 남편은 내 얼굴에 검정 숯을 발라주었다.
우린 서로 발라주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별들도 우릴 따라 웃어주었다. 남편은 언제 준비를 했는지 쇠꼬챙이에 머쉬멜로를 끼워 하나씩 주었다. 그것을 불 위에서 살살 돌려가며 구웠다. 달콤한 머쉬멜로를 먹으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더 나이가 들어도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을 차곡차곡 가슴 속에 쌓았다.
우린 마지막 밤은 그렇게 행복하게 보냈다.
인생을 살아보니 행복이 따로 존재 하지 않고 내 안에 있다는 걸 진작 알았지만, 그걸 느끼지도, 깨닫지도 모르고 살아온 세월! 나는 그 잃어버린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을 듯이 서둘렀다. 이제 우리가 살아온 시간 보다 남아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밤이 끝나면 돌아 갈 수 있는 집이 있다.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갈 친구를 업고 방랑이 아닌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2023년 8월 20일~25일까지 5박6일 일정)


기사 등록일: 2023-09-22
Juksan | 2023-09-26 21:35 |
0     0    

감사합니다. 독자들이 함께 여행하는 체험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Ainsworth 한번 방문해 보시길요. ^^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로또 사기로 6명 기소 - 앨버.. +4
  웨스트젯 캘거리 직항 대한항공서..
  성매매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 한..
  버스타고 밴프 가자 - 레이크 .. +5
  캘거리 의사, 허위 청구서로 2.. +1
  캘거리 고급주택 진입 가격 10..
  주정부, 전기요금 개편안 발표..
  미 달러 강세로 원화 환율 7%..
  해외근로자, 내년부터 고용주 바..
  CN Analysis - 2024 예..
댓글 달린 뉴스
  캐나다 동부 여행-뉴욕 - 마지.. +1
  동화작가가 읽은 책_59 《목판.. +1
  버스타고 밴프 가자 - 레이크 .. +5
  캘거리 초미의 관심사, 존 Zo.. +1
  캘거리 존 Zone 개편 공청회.. +1
  오일러스 플레이오프 진출에 비즈..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