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재미있는 음악 이야기 84 _ 신윤영(윤 음악학원 원장)
클래식 음악 종합 선물 세트 –영화 샤인(Shine)
스콧 힉스 감독의 영화 <샤인>1996년 작
샤인 영화의 실제 주인공 데이빗 헬프갓
귀에 이어폰을 꽂은 허름한 외투 한 장만을 걸친 중년 사내가 두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영화 포스터를 본적이 있는가? 음악영화로는 드물게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영화 샤인(1996년 스콧 힉스 감독), 이 영화는 허구가 아닌 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실제 삶을 영화 한 것이라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데이빗 헬프갓이다.
이 영화를 만든 스콧 힉스 감독은 우연히 신물을 읽다가 바렌보임, 아이작 스턴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에게 해외유학을 권유 받았던 피아노의 신동 헬프갓이 어느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졌고, 그 사라졌던 피아니스트가 재기의 리사이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가 오랫동안 정신병으로 고통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샤인”이라는 제목은 영국의 어느 록 그룹의 노래 제목 <광기의 다이아몬드에 빛을!(Shine on you Crazy Diamond!)>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영화가 광기 어린 천재의 파란만장한 삶을 예고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는 엄격한 유태인 아버지 밑에서 외아들로 자란 헬프갓(제프리 러쉬)을 피아니스트로 대성시키려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아버지는 자신의 형제들을 나치에서 잃은 상처로 헬프갓을 세상에 뺏길 것을 걱정하여 아들의 특별함을 인정하지만 그의 앞길(유학)을 막는다. 하지만 이미 천재성을 인정받아 당시 저명한 음악가들로부터 헬프갓은 유학을 권면 받고, 아버지의 반대를 뒤로 하고 영국으로 유학 길에 오르지만 “가족을 버렸다.”는 아버지의 저주로 상처를 받는다. 그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벽히 연주하지만 심한 정신적 압박과 신경쇠약으로 호주로 돌아와 정신병원에서 10여 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허름한 옷차림에 정신이 온전치 못해 보이는 남성이 초라한 모습으로 레스토랑에 뛰어들어 피아노 치려 한다. 레스토랑 손님들은 그를 비웃지만 그는 라흐마니노프가 편곡한 림스키코르사프의 <왕벌의 비행>을 완벽히 연주하면서 세상에 그가 살아있다는 신호탄을 알린다. 또한 10여 년의 세월을 혼돈과 격리 속에서 보내던 헬프갓에게 운명적인 여인이 나타나는데, 그녀는 여자 점성술사 길리안 머레이이다. 정신적으로 심약한 헬프갓에게 영적으로 성숙한 길리안의 만남은 운명이었는지 그녀의 도움으로 헬프갓은 재기에 성공하고 영혼의 상처에서도 해방된다. 영화에서는 좀더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위하여 그의 신경쇠약의 원인을 아버지의 폐쇄성이 직접적인 요인처럼 묘사하였으나 실제로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헬프갓이 정신을 놓아 버릴 만큼 “악마의 기교가 있는 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3번은 어떤 곡일까? 대중적이고 인기가 높은 2번에 반해 3번은 세상에서 라흐마니노프만이 연주할 수 있다는 평을 들을 만큼 기교가 뛰어난 곡이다. 3번이 남다른 것은 전적으로 피아노를 위한 곡이기 때문이다. 보통 협연은 솔로 악기와 오케스트라의 조화를 이루며 주제를 주고 받으며 노래하기 마련인데 이 곡은 오직 피아노 한대를 위해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악기가 존재하는 것처럼 피아노가 독보적인 곡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고 뛰어난 기교의 소유자였으니 오케스트라 전체를 압도할 카리스마를 충분히 가졌겠지만 어느 누가 섣불리 도전하겠는가.
<샤인>에서 이 콘체르토는 3번이나 나오는데 헬프갓의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기대를 거는 장면, 성인이 된 헬프갓이 안벽히 연주하는 장면, 그리고 좌절의 시기를 거쳐 다시 대중 앞에 서는 장면에서 나오면서 스토리의 중심에 서 있는 곡이다. (여기서 잠깐! 성인 헬프갓을 연기한 제프리러쉬는 이 곡의 연주장면을 촬영하기 위하여 240일간이나 밤낮으로 연습할 만큼 최선을 다했으며(실제 연주는 헬프갓이 했다) 그 결과 제프리러쉬는 이듬해 오스카영화제, 골든글로브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과 왕벌의 비행 말고 영화에 나오는 명곡들로는 다음과 같다. 9살의 헬프갓이 경연대회에서 2위로 밀려났을 때 나오는 음악은 쇼팽의 <폴로네이즈>이며, 슈만의 <어린이 정경>은 유년시절의 배경 음악으로, 영국 왕립 음악원의 세실 팍스 교수로부터 터치감을 지도 받는 부분에서 나오는 곡은 리스트의 <라캄파넬라>, 헬프갓이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장면에 어김없이 나오는 곡은 비발디의 <글로리아>등이다. 한 곡만 들어도 가슴 벅찰 명곡들이 영화 내내 연주되니 이것이야 말로 “클래식 음악 종합 선물 세트”가 아니겠는가! 영화에서는 피아노 협주곡에 가장 큰 비중을 두지만 내게 감동을 주었던 곡은 피아노 곡이 아닌 비발디의 세속 칸타타 <글로리아>에 수록된 곡이다. 비브라토 없는 청아한 소프라노의 목소리는 영화 포스터처럼 자유롭고 평온해서 어떤 상처든지 이겨내고 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현재 헬프갓은 재기에 성공하여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의 성공 이후 1997년 서울에도 내한 공연을 하였지만 그의 연주를 보면 아직 행동이나 정신상태는 영화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둠의 긴 터널을 스스로 깨고 나온 그의 영혼의 귀환에 큰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천재”! 이 얼마나 매력적인 단어인가, 하지만 천재이기에 한 쪽에 에너지를 쏟아 부어 다른 한 쪽을 잃을 수도 있는 선택 받은 천재의 삶 또한 녹록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글 신윤영 (윤 음악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