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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재미있는 음악 이야기 43 _ 글 신윤영(윤 음악학원 원장)

소꿉 장난 처럼,,, 짧지만 진지했던 사랑 모차르트 -2

-모차르트의 부인인 콘스탄체 베버 -모차르트의 6명의 자식중 생존 한 칼과 프란츠 
알로이지아에게 받은 시련의 상처를 모차르트는 또 다른 사랑을 통해 치유 받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바로 베버가의 셋째 딸이자 알로이지아의 동생이었던 콘스탄체 베버 이다. 모차르트가 1781년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보아도 이미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나있음을 알 수 있다.

“랑게부인(알로이지아)을 사랑했을 때 난 참 어리석었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사랑의 노예가 되면 사람은 이성을 잃어버리나 봐요. 하지만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그리고 내 느낌으로는 그녀도 내게 전혀 관심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

그러나 냉철한 그의 아버지는 모차르트의 맹목적인 연애 감정에 위험을 감지한다. 그래서 콘스탄체와의 교재를 허락하지 않는데 모차르트는 “그녀와 결혼할 마음이 없다” 라고 아버지에게 숨긴다. 아버지에게 콘스탄체를 사랑하지도 결혼하지도 않겠다고 말했던 모차르트는(7월) 1981년 12월 15일에 결혼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독립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다. 의존적 성향의 모차르트가 완전히 성숙해 져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둘의 결혼은 모차르트 아버지 레오폴드의 반대로 쉽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에게”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연인을 버릴 수는 없을 겁니다.”라고 강경히 말하고 아무리 사정해도 아버지가 허락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모차르트는 1782년 8월4일에 결혼식을 올린다. 이는 모차르트가 베버가에서 제시한 결혼 서약서에 사인을 한 다음날이었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죽기 전까지 9년을 함께 살았는데 9년 동안 4남2녀의 자식을 낳았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후손이라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6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4명은 일찍 죽고 칼과 프란츠 두 아들은 생존했지만 이 둘도 자식이 없었기에 모차르트의 후손 또한 없다.
모차르트의 평전등에서 콘스탄체를 평가하기를 낭비가 심할 뿐만 아니라 변덕스럽고 기분이 좋을 때는 온천장에선 다른 사내와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하고 우울할 때에는 자살기도를 하는 감정기복이 심한 여자였다고 한다. 또한 모차르트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좋은 평판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모차르트는 늘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고자 한 유럽 순회공연을 통해 오히려 더 큰 빚만 지게 되었다. 그는 35세에 레퀴엠을 작곡하던 중 미완성으로 남긴 채 심장쇼크와 과다출혈로 죽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 싸고 독살 설을 비롯해 수많은 추측 설이 있기 때문에 오늘 날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하지만 콘스탄체를 악처라 하기에는 같은 여자로서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9년 동안 6번의 임신과 출산으로 겪었을 감정의 기복, 기력이 쇠하여진 건강, 늘 경제적으로 어려워 힘든 생활고등을 볼 때 그녀를 나쁜 아내라고 평하기는 억울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모차르트가 순회공연 중 아내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따뜻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남편에게 사랑 받는 악처가 어디 있을까?

“…..정말 보고 싶다오 ,자 이제 정말 건강하도록 해요. 자주 웃고 재미있고 행복한 생각만 해요. 내 생각도 내 이야기도 자주 하도록 하고…./중략/….내가 당신을 사랑하듯 날 영원히 사랑해 주오. 그리고 영원한 나의 사랑이 되어주오, 안녕, 몸 조심해요. 자! 잡아봐요. 붕!붕!붕! 설탕처럼 달콤한 키스 세 개가 당신을 향해 날아가고 있어요. 1791년 7월6일 빈…”

아…달달 하다…모차르트…
그가 생존 당시 인정을 받았던 받지 못했던, 모차르트는 우리에게 멋진 음악가이다. 많은 곡을 남겨주었고 또한 성숙한 사랑을 했다. 모차르트 처럼 깊고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기사 등록일: 201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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