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늑대 _ 유인형(에드몬톤)
나이 들수록 신선한 산소가 그립다. 무기력해지는 게 싫다. 산다는 게 뭔가.
‘파트너 헌터’로 따라 나섰다. 서북쪽 오지로 올라간다. 파트너는 사냥꾼 조수로 쫓아다니지만 총을 쏠 수는 없다. 동물 종류에 따라 12가지 사냥총을 판다. 시민권자에 한해서 사냥 면허를 허가한다.
벌써 단풍이 불탄다. 낮은 분지는 황금빛으로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평화강 물이 흐르는 들소떼 지역으로 올라가다 멈춘다. 더 이상 차량으로 올라갈 길이 없다.
빨간 모자를 쓰고 빨간 재킷을 걸친 후 버풀러 샛강으로 따라간다. 숲속은 수런수런 야생 동물들의 향연이다. 짝짓기의 계절, 발정기간이 찾아왔다. 따악, 타딱. 뿔 시합이 한창인 산양들. 눈발이 휘날리는 초겨울까지다. 사슴과에서 제일 덩치가 큰 무스는 나무 동치를 꺾으며 뿌우 뿌- 위치를 알린다. 발정난 암내의 규수를 손짓하는 신호다. 깊숙이 분지를 가로지르며 나침이 방향을 기록한다. 이런 곳에서 방향을 잃으면 영원한 원시인으로 떠나게 된다. 일체의 TV나 전화, 차량 소음이 뚝 끊어진 곳이어서 생존법에 기댄다. 저 야생 동물들도 새파란 풀잎이 나는 봄날에 새끼를 낳기 위하여 사랑 싸움이다. 힘 없으면 쫓기다 죽어야 하는 법칙이 살아 있다. 힘 없으면 잡아 먹힌다.
높은 구릉에서 잠시 쉰다. 강변 잡목 사이로 넓은 공터가 보인다. 마치 타악기를 두들겨대듯이 엘크가 힘을 겨루고 있다.
둔탁한 타악기 괴성에 이끌려 암놈들이 몰려든다. 피투성이가 된 승리자를 기다린다. 쌍안경으로 숨어서 지켜본다. 힘겨루기에 진 수놈들이 변두리로 쫓겨간다. 이겼다아- 외치듯이 피투성이가 된 수놈이 몽땅 암놈을 독차지한다.
어디서 저런 정력이 폭발할까. 슬그머니 목덜미를 만져 본다. 엘크로 태어났다면 변두리에서 암놈을 기웃거리다가 사냥감이나 될 터이다. 천만다행히도 코리언으로 태어나 한 명의 아내가 있다. 배달민족이란 게 큰 위안이다. 네 명의 아내를 허용하는 산유국에 태어났어도 처량한 홀아비로 늙어 갔을 것이다. 목덜미를 문지르며 싱긋 웃는다.
물고기를 낚는 낚시터가 따로 있다. 물고기는 아무 곳에나 살지 않는다. 야생 동물도 사냥터가 따로 있다. 물고기가 미끼를 찾아 입질을 하듯이 야생 동물들은 먹잇감 근처에 산다. 반드시 자기가 다니는 길이 따로 있다. 그 길목을 지키고 앉아 무한정 기다리는 게 사냥술이다. 익숙한 전문 사냥꾼이라면 그 길목을 재빨리 알아챈다. 암내 난 소리로 반복해서 유혹하기도 한다. 먹잇감을 태워 바람 방향으로 냄새를 풍긴다.
흑곰은 강변이나 호숫가에 산다. 곰 사냥시에 좋아하는 먹잇감 냄새로 불러들인다. 왕늑대(Buffalo Wolf)는 숫자가 적다. 한 두 마리씩 돌아다니는 맹수다. 덩치가 크고 날렵해 들소를 잡아먹는 괴력이 있다.
그 왕늑대가 사냥 목표물이다. 먹잇감인 들소떼가 사는 버풀러 샛강의 높은 언덕으로 오른다. 컴컴하게 어두워 온다. 낮이 가면 밤이 온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공포와 만난다. 야행성 늑대가 운다. 고도로 지능화된 늑대의 섬칫한 괴성에 긴장된다. 멀리서 아우~ 울면 가까운 주변에서 야~압 하고 응답한다. 몇 마리가 비잉빙 돌면서 노려보면 그대로 초죽음이다.
몇 십 배의 힘을 가진 무스도 쓰러진다. 그 용맹성과 협동심 때문에 전사들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후각이 발달해 몇 킬로미터 밖의 사냥꾼 총 냄새를 맡는다. 곰 기름을 총에 발라 위치를 속여야 한다.
농촌이나 골프장 근처엔 코요테란 들개가 산다. 늑대 사촌격인 코요테가 애완용 동물을 물어가고 가축 피해를 주자 총과 덫으로 잡았다. 들개가 줄어들자 천적인 뮬러 사슴떼가 번창해 농작물 피해가 늘어났다. 농부들이 천적 사냥을 멈추었다. 먹이사슬의 생태계는 긴밀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낚시대회가 있듯이 사냥대회도 있다. 그때 환경 보호 야생 동물 경찰이 특수 사냥 면허를 판다. 깊은 계곡에 사는 로키산맥의 산호랑이나 삵(Lynx) 때문이다. 산토끼나 여우, 모르모프가 멸종으로 치닫는 걸 막기 위해서이다. 가장 험악하고 위험한 사냥 스포츠다. 헬기를 이용한 사냥은 불법이다.
또 하루가 저문다. 운 좋게 왕늑개 턱뼈를 주웠다. 가운뎃 손가락 두 배쯤 길이의 송곳니가 붙어 있다. 주변의 수북한 가랑잎을 목까지 덮고 추위와 공포에 떤다. 이때 크게 울리는 소리가 난다. 들소떼가 쫓기는 걸까. 유콘 주의 카리브떼가 남쪽으로 이동하는 걸까. 지구 온난화로 홍수가 자주 일어난다.
“아이쿠우!”
뜻밖이다. 상상하지도 않았던 야생말이 운다. 주인 없는 자유의 야생말이 후다닥 뛴다. 야행성으로 적응했는지 어둠 속을 잘도 달려간다. 저 말들의 원조는 7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룡떼가 멸종된 후에 초식동물로 지구촌 곳곳에 흩어졌다. 아프리카의 얼룩말처럼 이 로키 산맥 분지엔 자유를 찾아 나선 야생말이 뛴다. 유럽인들이 타고 다닌 포장마차나 원주민들의 말이 이히힝거리며 자유를 찾아 나선 것일 터이다.
새벽 하늘에 별들이 초롱거린다. 환절기에 나타나는 오로라가 살풀이춤을 춘다. 서북쪽 하늘 가득히 하얀 혼백이 피어오른다. 음양의 태양 자기와 파장이 부딪혀 한 맺힌 살(煞)을 풀어낸다. 얽매여 풀지 못하고 죽어 간 사랑 이야기를 무언극으로 푼다. 소리 없는 소리로 보여주는 오로라의 무언극은 신비롭다.
수많은 색상으로 찬란하다. 지구촌의 북반구엔 사랑을 못 이루고 죽어 간 혼백이 전설로 남아 있다. 간절한 분홍빛 사랑이 강렬한 태양 자기로 나타난다. 찬바람이 살풀이 가락으로 들려온다. 그 속에 밤새 애끓이며 짝을 찾는 동물 소리가 섞여 있다. 때묻지 않은 원시림의 천진스러움이 흐른다.
아직 지구는 살아 있다. 이 지구란 별의 어디에도 두 발로 걷는 인간이란 동물로 덮여 있다. 한때 인간의 조상이 태어난 2백만 년 전에 무시무시한 공룡이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얼마나 많은 공룡들이 죽었는지 한반도의 절반만 한 훠트 맥머리 근처에서 화석 연료 모래를 캐낸다. 화석 연료와 온갖 공해로 지구 온난화가 확산되고 있다. 언젠가 인간들도 공룡처럼 사라지게 될 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인류의 공존을 위해 너나없이 환경 오염을 고민할 때다.
다시 해가 뜬다. 야생 동물을 사냥하려면 해 뜰 때와 해 질 무렵이 적기다. 먹이를 찾고 물을 마시기 위해 움직일 시간이다. 가랑잎 속에서 간신히 일어나 눈을 턴다. 왕늑대는 보지 못했어도 수십 미터 거리의 백양나무 숲에서 갈비뻐만 남은 동물을 발견한다. 소름이 좌악 끼치며 아찔하다. 사냥꾼을 옆에 두고 이토록 끔찍한 잔치를 벌이다니. 비상용 위스키를 마시며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다. 내 갈비뼈를 만져 본다. 붙어 있다.
인간에겐 너무 독한 오염 냄새가 나는가. 부리가 긴 산까마귀가 이쪽을 본다. 저승사자 같아서 나무토막을 집어 던진다. 이제 삼일간의 죽을 고생 속에서 건강한 행복감을 찾았다. 왕늑대 중의 늑대는 두 발로 개척하는 한국인이란 걸 깨닫는다. 낯선 공포감이나 허망스런 좌절감도 큰 꿈을 꿀 때에 사라진다. 코리언들은 왕늑대의 야성 속에 큰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