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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그릇과 꽁보리밥 _  灘川 이종학<에드몬톤/소설가>

우리 부부는 딸들을 만나려고 매년 한두 번 정도 미국 LA 나들이를 한다. 그리고 LA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먹거리 투어에 나선다. 그 동안 딸들이 개척(?)해 놓았다는 식당들을 찾아서 별미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순례에 앞서 먼저 꼭 들리는 데가 있다. 추억의 설렁탕과 순댓국 전문식당이다. 한밭식당 설렁탕과 청진동 순댓국에 흠뻑 길들어진 입맛은 캐나다 이민 25년이 되었음에도 조금도 변할 줄을 모른다. 어려서부터 무의식적으로 각인된 음식 맛은 향수처럼 피어 오르기 마련이다. 양반은 안 먹어도 긴 트림을 한다지만,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 노릇이든 샌님 노릇이든 할 게 아닌가.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선비형은 어린이들 동화 속에서도 나오질 않는 세상이다.  
 
한겨울인 1월의 LA 날씨는 낮 기온이 섭씨 20도 정도까지 올라가지만, 사막성 기후라서 푸릇 청청한 야자수와 가로수 사이로 바람이 불면 제법 쌀쌀하다. 따끈한 설렁탕이나 순댓국을 먹기에 아주 알맞다. 설렁탕이라고 다 설렁탕이 아니다. 더없이 진하면서도 기름기나 잡내가 없이 깔끔한 국물 맛에다가 부드러운 고기 맛이 어우러져야만 진짜 설렁탕이다. 모양새야 볼품없는 뚝배기 가득 설렁탕이 나오면 물어볼 것도 없이 파와 다대기를 한 숟갈 듬뿍 넣은 다음 찰떡궁합인 깍두기 국물과 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맞추고 나서 그릇 채 후르르 국물부터 한 모금 마신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어허, 시원하다!” 이 기막힌 감탄사가 나오지 않으면 그야말로 식(食)을 모르는 식충(食蟲)이다.  
 
다음에는 순댓국 차례다. 6세기 무렵부터 북방 유목민족의 휴대용 식량서 유래했다는 순대는 한국의 대표적인 서민음식의 하나이면서도 그 친화력이 대단해서 전통음식으로 대접받는다. 순대에는 아바이 순대로 불리는 함흥식을 비롯한 개성식 평양식 전주식 등 지역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어려서부터 먹어온 피순대 즉 돼지 내장에 돼지피와 가진 재료를 넣은 순대를 선호한다. 이런 순댓국 명가를 타국 땅 LA에서 찾았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역시 뚝배기 한가들 오래 다린 사골 국물 같은 순댓국이 나오면 다대기와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무조건 공깃밥을 풍덩 만다. 그리고 쫄깃한 토종순대와 돼지 대장 등 부속고기를 숟가락 가득 입에 넣는다. 그 특유의 냄새와 담백한 맛, 오랜 내공을 들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진미이다. 행복은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설렁탕과 순댓국의 단골집에 있었다. 
 
맛깔스러운 설렁탕과 순댓국으로 망향의 정을 달랬으니 이제 길라잡이 딸들의 안내로 예정했던 먹거리 투어에 나섰다. 그 첫 번째 목적지가 꽁보리밥 집이었다. 토속적인 취향을 챙기는 딸들이 대견했다. 꽁보리밥 집은 정식 서양요리가 나올 것 같은 빌딩 아래층에 있었다. 식탁도 고급스러웠다. 이런 곳에 꽁보리밥이라니, 잘못 온 것 같아 내심 떨떠름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예감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간단한 메뉴를 보고 주문한 보리밥이 나오자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했다. 처음에는 일상적인 간단한 반찬, 콩나물, 미역무침, 계란찜 등이 나오더니 주인공인 꽁보리밥이 등장했다. 그러데 이게 웬 일인가! 지금은 보기 드문 양은그릇에 열무김치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거기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양은그릇이 여기저기 긁히거나 찌그러지고 가장자리는 볼썽사납게 곰보처럼 우굴쭈굴 흠집이 나 있었다. 완전히 옛날 고물상 한 구석 깊숙이 아무렇게 쑤셔 박혀 있어야 할 물건이다. 목 울대로 침이 넘어가는 놀라움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역시 찌그러지고 수없이 얻어맞은 자국이 선명하고 거무뎅뎅하게 그으른 애기 양은냄비에 보글보글 끓는 진된장찌게가 나타났다. 시계 바늘을 완전히 50년대로 돌려놓은 식탁의 해괴한 광경이 벌어진 셈이었다. 
 
보리밥이 담긴 양은그릇을 한 손으로 잡았다. 촉촉한 정감이 전해온다. 언제 이렇게 잡아봤던가. 앙증맞은 양은냄비에서 아직도 보글거리는 된장을 떠서 보리밥 위에 걸죽하게 뿌리고 비벼댔다. 그새를 못 참고 입안에서 군침이 마구 돈다. 밥 도둑놈 같은 고봉 숟갈질로 비빈 보리밥을 한 입 가득 떠 넣었다. 아이들 말 마따나 정말 죽여준다. 보리밥이 이렇게 맛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꺼벙하게 보였던 것들이 입 안에서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는다. 서너 번 부지런히 숟갈질을 하고 나서야 번개처럼 무엇인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이 고개를 들었다. 고추다. 보리밥에는 생 고추가 있어야 한다. 그제야 눈을 바로 떠보니 코 앞에 싱싱한 조선고추가 보였다. 상추도 있고 오이냉채도 얼굴을 내민다. 과연 보리밥상의 구색을 제대로 갖춘 식단이다. 우리에게 보리밥은 애환이 절절히 스며든 서민의 소중한 음식이다. 허기를 달래 주고 삶을 지탱케 한 우리 식 문화의 본령이기도 하다.  
             
보리밥만큼이나 양은그릇의 대면도 잊을 수 없다. 양은그릇은 8·15 광복 직후에 등장하면서 완전히 부엌 혁명을 일으켰다. 값이 싸고 어디든 쉽게 쓰인다. 찌그러진 멋이 더한지라 우선 사기그릇이나 놋그릇처럼 부담감이 없어 좋았다. 대폿집의 우글쭈글한 양은주전자는 추억의 대상이다. 술꾼이 술김에 내동댕이치고 그래서 술청 주인은 화 김에 발로 걷어차서 만신창이가 된 양은주전자에 들어 있는 술을 따라 마셔야 얼큰하게 취한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가히 그 정경을 짐작할 만하다. 빨리 뜨거워지고 빨리 식는 양은냄비의 특성이 빨리빨리 문화의 선도적 역할을 했다는 설도 있다. “솥 때~워, 냄비 때~워.” 동네 고샅을 누비며 땜장이가 외치던 소리는 지금도 귓가를 생생하게 맴돈다. 구멍을 막아 때워도 때워도 더 이상은 쓸모 없게 된 양은냄비나 그릇을 으스대며 엿장수 앞에 내밀던 아이들의 모습 또한 정다운 삽화로 지워지지 않는다.  
 
이번 먹거리 투어도 처음부터 예감이 삼삼하다. 옛 추억의 꽁보리밥과 양은그릇이 멋지게 첫 뚜껑을 열었으니 앞날의 기대가 만만하다. 수많은 인종이 모여 사는 LA에는 또한 헤아릴 수 없는 세계 각지의 토속음식들이 식객들을 유혹한다. 지구촌이 하나의 생활권이 되고 실시간 정보망으로 묶이면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가 사라질 듯한 요즘이다. 어느 민족의 어떤 음식이든 늘 감사하며 먹으리라. 어느 현자(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느니라!” 모리에르의 희곡 <수전노>의 제3막 5장에 나오는 꽤 유명한 대사이다.

기사 등록일: 201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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