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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추억, 100년 전 비미 릿지 _ 오충근의 기자수첩
 

비미 릿지 전투와 캐나다 정체성 확립
1차대전이 100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1914년-1918년까지 이어진 전쟁이었으니 내년이면 종전 100주년이 된다. 총성이 멎은 11월11일을 캐나다를 비롯한 영연방에서는 종전 기념일로 지킨다. 모든 전쟁이 마찬가지지만 1차대전 역시 누구도 원치 않았던 전쟁이었으나 전쟁은 필연적이었다.
1차대전 같은 커다란 역사적 사건은 한 두 가지 원인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원인은 영국과 독일의 군비 증강이었다. 보불전쟁이후 통일 독일은 경제와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 선진 공업국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하는 사이가 되어 각종 무기를 생산해 자국의 무장은 물론 인접 국가에 무기를 수출했다.
1908년부터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3년까지 유럽 국가들은 너도 나도 영국제 독일제 무기를 사들여 무기 수입 비용이 50%나 늘었다. 넘쳐나는 무기를 어디에 쓸 것인가? 아이러니 한 것은 전쟁이 시작될 때 연합국이나 동맹국이나 이 전쟁이 4년씩 끌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차대전 사망자는 9백3십만명이 넘는다. 부상자는 약 2천3백만명을 헤아린다. 엄청난 사상자가 생긴 이유는 과학의 발전으로 기관총, 독가스, 전차 등 대량살상무기가 실전에 투입되었는데 지휘관들은 나폴레옹 시대 전술 개념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일년 반 만의 값진 승리
비미 릿지(Vimy Ridge)는 프랑스 북부 도시 아라스에서 택시로 15분 거리에 있는 전략 요충지다. 아라스는 프랑스 혁명 때 산악파 지도자로 활약한 로베스피에르의 고향으로 유명한 도시다. 비미 릿지는 1차대전 때 독일 6군이 철통 방어를 하고 있었는데 영국과 프랑스군은 보병 축차 투입으로 엄청난 병력만 손실한 채 소득이 없었다. 1917년 연합군은 비미 릿지 점령 임무를 캐나다군 4개 사단에 부여했다. 영국군 1개 대대가 배속되었다.
아더 코리 장군이 지휘하는 1사단은 릿지의 우측 돌파를, 2사단과 3사단은 정면 돌파를, 데비드 왓슨 장군이 지휘하는 4사단은 좌측 돌파를 맡았다.
돌격에 앞서 포병부대의 포 사격이 시작되었다. 1주일 밤낮으로 100만발 이상의 포탄이 독일군 진지로 날아갔다. 쌍방의 격렬한 포격전은 런던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4월9일 부활절 월요일 오후 6시 캐나다 4개사단 13개 대대에 돌격명령이 하달되었다. 수류탄과 총검으로 무장한 보병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캐나다 지휘관들은 영국군 프랑스군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소대마다 임무를 부여했다.
비미릿지 전투 전사자는 3,598명, 부상자는 7,104명이다. 그 중 가장 큰 손실은 4사단 14대대로 몬트리얼에서 온 대대는 병력 40%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다. 4사단 돌파 거리가 145고지와 가장 근접한 800미터였으나 지형이 가파르고 독일군 화력이 집중했기 때문이다. 노바 스코시아의 85대대의 지원으로 비미 릿지를 완전히 점령했다.
이에 비해 1사단은 돌파거리가 4킬로미터로 가장 길었으나 지세가 완만해 병력의 20%를 잃었다. 이는 약소한 피해에 해당되는데 기록에 의하면 1.5미터 당 1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으니 비미 릿지 전투의 참상을 알만하다. 독일 6군은 사상자 2만명에 포로 4천명이 잡혔다.
비미 릿지를 점령했다는 소식에 어느 프랑스군 장교가 “그럴 리가 있나, 님이 잘못 들었겠지”라고 믿지 않다가 캐나다군이 점령했다는 소리를 듣고 “캐나다라면 가능하지.”라는 일화가 있듯 캐나다군의 희생으로 연합군은 1년 반 만에 승리다운 승리를 기록했고 연합군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1차대전은 캐나다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영 연방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전한 캐나다는 특히 비미 릿지 전투의 승리로 ‘영 연방 캐나다’가 아닌 캐나다로서의 독립된 정체성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전쟁
1차대전 이후로 전쟁은 대량 살륙전이 되어 천하보다 귀하다는 인명이 무수히 희생되었으나 인류는 전쟁으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해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2차대전, 한국전쟁, 월남전, 중동전 등등. 며칠 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 중 정상회담 때 시리아 공격명령을 내려 미사일 50발을 시리아 공군기지에 발사했다.
공격명령 2시간 전에 러시아에 통보해 시리아 공군기지에 있던 러시아 전투기들은 무사히 대피했다. 나토 동맹국인 캐나다에는 1시간 전에 통보했다. 러시아 발표에 의하면 4분 사이에 발사된 미사일 5-60발 중 목표에 도달한 것은 23발로 나머지는 확인 불가 지역에 떨어졌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59발 중 58발이 명중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미사일 공격 명분은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해 민간인을 살상했기 때문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번 미사일 공격으로 죄 없고 화학무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민간인이나 아이들이 9명 희생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이라크 공격할 때도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 파괴를 핑계로 전쟁을 시작했었다.
미국이 손님 불러놓고 시리아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것은 손님인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보내는 북한용 경고 메시지이기도 했다. 북한이 핵 개발을 중지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미국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다. 미국은 칼빈슨 항공모함 전단을 한반도에 다시 파견해 북한을 압박하려 하고 있다.
한반도 긴장과 북한의 노림수
북한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시리아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미국은 곧 이어 항공모함 전단을 한반도 해역에 파견해 북한 압박에 들어간 사실은 1994년 영변 핵 시설 공격계획에 이어 다시 한번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감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반도에 고조 되고 있는 군사적 긴장감이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군사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미국의 목표는 북한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비핵화에 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강력한 반미국가인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을 보유한다는 것은 미국으로서 견딜 수 없는 일 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를 거론하며 “북한 핵 위협은 인류문제”라고 거창하게 표현 했을 뿐 아니라 영국 메이 총리와 전화통화에서도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국제사회가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 공격 목표가 된 다는 것이 얼마나 신경이 쓰이고 뒤통수가 간질간질한 일인지 알 수 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비핵화가 전제되면 언제라도 북한과 대화할 수 있으나 현 상황은 미국은 물론 중국도 북한과 대화할 여건이 안 된다고 말해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필요하다면 북한 핵 시설을 선제 타격하는 것도 가능성 중에 한가지인데 군사행동은 모든 외교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후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 하려면 북한 핵 공격 목표에 들어가 있는 동맹국 일본, 한국을 북한의 핵 공격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선제타격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일본을 인질로 잡고 시간을 벌면서 결국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을 동맹 딜레마(Alliance Dilemma)라고 한다.
지난 1994년6월에도 클린턴 대통령이 영변 핵발전소를 공격하려고 항공모함 2척과 전함 53척을 동해안에 출동 시켰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포기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북한의 핵 잠재력이 지금처럼 위협적이 아니었을 때인데 그 때도 결론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가장 불이익 하다는데 도달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영변 핵 공격을 막기 위해 전화로 2시간 동안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해 전쟁을 막았다고 썼는데 백악관은 당시 통화기록을 조사한 결과 양국 대통령의2시간 통화는 없었다고 확인했다.
클린턴 대통령 회고록에 의하면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보고서를 읽고 북한 공격을 포기했다고 썼는데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보고서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보고서가 올라와 북한과 관계가 평화적으로 정리되고 북한도 핵개발 포기하고 그 돈으로 인민들 이밥에 고기국 먹이고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 왔으면 좋겠다. 그 길은 또한 평화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다.

기사 등록일: 20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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