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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근의 기자 수첩) 쿠르드족의 비극
 
제국주의가 남긴 상처
1차대전은 독일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과 같은 편이 되어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전쟁이다.
독일 통일의 주역 비스마르크는 전쟁을 반대하는 외교의 천재로서 유럽국가들에게 “우리는 너희를 해롭게 할 생각이 없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 주변국을 안심시켜 유럽은 보불전쟁 이후 1차대전까지는 평화를 유지했다. 그때를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라고 부른다.
그런 비스마르크가 못 마땅한 빌헤름 2세는 철혈재상을 해고하고 “독일의 국력과 위용을 마음껏 보여주겠다.”고 철부지 같은 생각을 하다 기어코 사고를 쳤으니 곧 1차대전이다
독일은 신흥 강국이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나 오스만제국은 쇠퇴해 가는 중이었다. 특히 오스만제국은 14세기부터 20세가 초까지 거의 600년 동안 발칸 반도, 크림반도 와 우크라이나 남부 지방, 북 아프리카에서 바그다드 바소라에 이르는 중동 지역 등 광활한 지역을 통치해온 제국이었다.
1차대전이 끝나기 2년 전 영국의 마크 사이크스(Mark Sykes)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죠르주 피코(Francois Georges-Picot)가 전쟁에 이기면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고 중동을 나눠 먹기로 비밀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에 따르면 영국은 지중해와 요르단강 사이 해안 지역 일부와 지금의 이라크, 요르단의 B구역을, 프랑스는 이라크 북부 일부와 시리아, 레바논의 A구역을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때 영국의 식민장관이 윈스턴 처칠이었는데 카이로에 있는 사무실에 앉아서 지도에 삼각자 대고 줄을 죽죽 그어 국경선을 정했다. 부족 중심의 아랍인들 생활 방식이나 시아파 수니파 등 종교 문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현지인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았다.
그 당시 중동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국가 개념이 없었다. 대대로 살아온 부족들끼리 공동체를 이뤄 양떼를 키우거나 장사를 하면서 이스탄불에 있는 술탄에게 세금만 내면 되었으니까. 그랬는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너는 오늘부터 시리아 국민이다.” “너는 이라크 국민이다.” “너는 요르단 국민이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가 바로 이런 경우다.
빼앗긴 나라 찾으려고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이민자들끼리 모여 의기투합하여 “우리도 국가라는 걸 세워보자.”고 결의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국민이 되었으니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다.
어제 저녁까지 같이 만나 술 한잔 하던 이웃이 다음 날 아침 다른 나라 국민이 되었다. 그 반대로 원수처럼 지내며 말도 섞지 않던 부족과 같은 나라 국민이 되었다.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에 나오는 장면이 있다. 하리스의 족장 알리(오마 샤리프)는 베두윈이 자기 부족의 우물에서 물을 마셨다고 사살한다. 외국인은 마셔도 되지만 다른 부족이 내 우물물을 마시는 것은 용납이 안된다. 그런 부족들을 한데 묶어 나라를 만들었으니 단 하루인들 조용하겠는가?
수니파가 살던 알레포는 시아파가 지배하는 시리아와 묶였고, 수니파 중심 도시 모술은 시아파 대도시 바그다드와 한 나라가 됐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술탄의 권위가 무서워 수니파와 시어파가 말썽 없이 조용히 살았으나 새로 생긴 정부에는 그런 권위가 없었다. 그때 잘못 설정된 국경이 시리아 내전 이라크 전쟁의 단초가 되었다.
국경을 입맛에 맞게 그은 이면에는 1910년 중반 발견된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원유를 차지하려는 영국의 의도도 있었다. 영국은 그동안 이란의 원유에 의존해 왔으나 처칠은 영국이 제국적 지위를 유지하려면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시해 해군 장관으로 재직할 때 증기선이 주종을 이룬 전함을 디젤 엔진으로 교체했다.

쿠르드족의 비극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제멋대로 나눠 갖고 국경을 그을 때 빠진 민족이 있었으니 쿠르드족이다. 3천만명이 넘는 단일민족이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갈라졌다. 터키(튀르키예) 동남부 산악지대에 1,800만-2000만명이 살고 있고 이란에 800만명-1,000만명이, 이라크에 400만명-650만명이, 시리아 북동부에 200만명-300만명이 살고 있다.
이왕에 나라를 세워줄 생각이었으면 쿠르드족 밀집지역에 따라 국경을 그어 단일민족끼리 살게 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녹녹하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은 지배층인 터키계와 피지배층인 아랍계가 언어도 달랐고 문화도 달랐다.
1차대전 때 영국과 프랑스의 이간질이 시작되었다. 아랍 민족주의를 살살 충동질했다.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데 왜 오스만 제국에 충성하는가? 우리를 위해 싸워 달라. 독립시켜 줄게.”
아라비아 로렌스의 영국 장교 로렌스가 활약하던 시대가 이때였다.
여담이지만 아랍 독립에 진심이었던 로렌스는 파이잘 왕자를 성심성의껏 도와 아랍 부족 군대를 이끌고 오스만 제국에 맞섰다. 군인이었던 그는 정치인들의 고단수 책략을 몰랐다.
강인하고 용감한 쿠르드족은 연합국의 편에 서서 열심히 싸웠다. 오스만 제국은 패했으나 영국과 터키 사이의 로잔 조약으로 터키는 공화국으로 재탄생했고 쿠르드족에게 자치권 부여하겠다는 영국의 약속은 공염불이 되었다.
영국의 원유에 대한 욕심도 문제였다. 지금의 이라크 영토인 모술과 키르쿠크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다. 그 지역은 쿠르드족 밀집 거주지역으로 자존심 강하고 다루기 힘든 쿠르드족에게 유전이 넘어간다면 유전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말 잘 듣는 이라크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프랑스는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영국은 이라크를 점령했다. 결과를 본다면 로렌스는 아랍 민족주의를 이용해 전쟁을 이기고 중동 땅 나눠 먹은 제국주의에 앞장선 꼴이 되었다. 환멸을 느낀 로렌스는 영국으로 돌아가 훈장을 반납했다. 중동에서 공을 세워 대령으로 진급한 로렌스는 공군 사병으로 재 입대했다.

거듭되는 강대국의 배신
영국과 프랑스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제멋대로 그은 국경선 때문에 중동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 ‘세계의 화약고’라는 별명을 얻었다. 3천만명이 넘은 단일민족이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이리 저리 흩어져 살며 쿠르드족은 터키, 시리아, 이란, 이라크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런 쿠르드족이 세계의 관심을 다시 얻었으니 바로 IS 때문이었다. IS는 사악한 테러리스트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잠시나마 차지했던 영토를 보면 중동은 그렇게 국경선이 설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11년 시리아가 내전 상태에 빠지고 이라크도 전쟁으로 중앙정부 통제력이 약해지자 IS는 시리아, 이라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칼리프가 통치하는 이슬람 국가를 세웠다고 선전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미국은 아프간 전선에 이어 지상군을 더 파견해 IS를 상대할 수 없었다. 미국은 쿠르드족 민병대, 이라크 정부군, 시아파 민병대에 무기와 전쟁물자를 공급하고 공군이 IS 본거지 공습을 맡았다. IS를 소멸시키는데 쿠르드족 민병대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여자들까지 민병대에 지원을 해 수니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를 뿌리 뽑는데 힘을 보탰다.
미국은 쿠르드족에게 신세를 졌다. 미국과 쿠르드족 지도부 사이에는 문서를 주고받은 적이 없지만 이번에 자치령을 받게 되리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아무리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다’는 기본 원칙 아닌가?
그런데 터키가 강력하게 반대했다. 터키는 쿠르드족을 인정하지 않았다. 1,800만-2,000명의 쿠르드족이 터키 동남부에 살고 있는데 그 지역에서는 쿠르드어를 가르칠 수도 없고 사용할 수도 없다. “터키에 소수민족이란 없다” 이것이 터키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쿠르드족은 터키에서 쿠르드 노동당을 조직해 활동하고 있으나 터키는 불법 테러단체 취급한다.
터키는 미국에게 쿠르드족 존재를 인정한다면 터키 공군기지에서 철수하라고 압박했다. 터키는 나토 회원국으로 미국의 동맹이고 인지를리크 공군기지에는 50기의 전술핵을 미국이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의 강력한 반발에 미국은 쿠르드족과의 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
2019년 10월 미군은 시리아 북부에서 철수했다. 터키로부터 쿠르드족 민병대 공격을 막아주던 방패가 사라진 것이다. 중앙정부의 통제가 약화된 사이에 시리아와 이라크에 자치정부를 세우려던 쿠르드족의 꿈은 이렇게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이 에너지 확보라는 국익 때문이다. 미국은 셰일 가스 때문에 중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지만 러시아, 시리아, 터키, 이라크, 이란 등 에너지 확보와 역내세력균형 때문에 쿠르드족을 박해하고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사 등록일: 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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