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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앨버타, 21세기 엘도라도 인가?
-최초의 골드러시- Dwelt a miner, forty-niner, and his daughter Clementine.-
북미대륙에 골드러시 바람이 분 것은 1848년 샌프란시스코 일대였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금맥이 발견된 소식이 알려지기 까지는 시간이 걸렸으나 1848년 당시 인구 1,000명에 불과하던 샌프란시스코는 2년후 인구가 25,000으로 폭발하는 현상을 보였다.
미국 내에서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금을 찾아 몰려들었다. 미국과 가까운 맥시코, 중앙 아메리카는 물론이고 남 아메리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인들, 중국, 호주, 필리핀, 터키, 심지어 바스크족까지 몰려들었다.
그래서 금 채굴이 본격화 되던 1849년에 샌프란시스코 일대로 몰려든 사람들을 특별히 forty niners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1945년 생들을 해방둥이 라고 한다던가 38선이 그어진 후에 공산당 피해 월남한 사람들을 38 따라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49ers는 샌프란시스코 미식축구팀 이름이기도 하다. 이 때 캘리포니아 인구가 30만으로 급증해 준주에서 정식 주로 승격했다.
초기에는 원시적 사금채취방법으로 금을 채굴했으나 효과적인 채굴을 위해 자본과 기계가 투입되는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 개인보다는 기업조직이 금 채굴의 대부분을 차지해 극소수에게는 막대한 부를 안겼지만 대부분은 희망에 부풀어 왔다 절망과 실망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캐나다의 골드러시-

샌프란시스코 골드러시가 끝날 무렵인 1897년 캐나다 유콘 클론다이크 강에서 금맥이 터졌다는 소식이 퍼졌다. 1897-1898년 사이에 10만명이 몰려들었다. 금을 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만 모인 것이 아니다. 클론다이크 레이디로 불리는 무희, 창녀를 비롯해 도박사, 술집, 생필품 공급업자들이 뒤따랐다.
그들은 시애틀에서 증기선에 몸을 싣고 알라스카로 향했다. 시애틀 인구가 급증한 것도 이때로 3,500명 인구가 10년 사이에 42,000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알라스카 스캐그웨이에서 내려 Chilkoot Pass, White Pass를 지나 클론다이크 강으로 향했다.
이들은 일년 먹을 양식과 금 캐는 장비를 지고 Chilkoot Pass로 향했다. 그러나 지역정보가 거의 없어 북극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경사 30도의 White Pass에는 눈이 말 가슴까지 쌓였다. 말 3,000마리가 죽어 Dead Horse Trail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1899년 White Pass를 넘는 기차길이 생겨 더 이상 죽을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육로로 출발한 사람들은 에드몬톤이 집결 지였다. 지금 103 스트리트 화이트 에비뉴 바로 아래 있는 스트라스코나(Strathcona)역에서 그들은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그 당시 스트라스코나 역은 북미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기차역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Klondiker들의 애환이 담긴 스트라스코나 기차역은 식당, 술집으로 변했다.
10만명이 몰려 갔으나 금을 캐서 돈 번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정작 돈을 번 사람들은 식품, 의류 등 생필품 공급업자들이었고 술 장사, 여자 장사, 도박사들도 한몫 단단히 챙겼다. 돈을 벌었던 못 벌었던 많은 사람들이 현지에 주저앉아 살길을 찾았다. 이들이 북미 서부의 초기 이주자들로 그렇게 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다.

-골드 러시가 남긴 것-

골드러시는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캘리포니아는 급증하는 인구로 준주에서 주로 승격했고 샌프란시스코라는 신흥도시가 생겨났다. 개척지에 불과했던 에드몬톤도 골드러시로 인해 새로운 교통체제가 생기고 철도가 연장되고 새로운 길이 생겼다. 교통의 발달로 사람만 오가는 것이 아니고 물자도 오고 간다.
뿐만 아니라 삶이 오고 가면서 관습, 전통, 문화, 문명이 오고 간다. Levi’s Strauss 청바지가 생겨났고 “넓고 넓은 바다가 에”로 시작되는 한국인의 애창곡 클레멘타인도 골드러시 부산물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금 채굴로 자연이 훼손 당했다. 또한 골드러시는 평화롭게 살던 원주민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원주민 거주지역에서 금이 발견되면 원주민들은 강제 이주되었다. 원주민들과 맺은 조약은 휴지에 불과했다.
수우족의 위대한 추장 “앉아 있는 황소(Sitting Bull)”가 좋은 예다. 수우족이 살고 있는 검은 언덕에 금맥이 있다는 게 알려지며 백인들의 탐욕이 꿈틀거린다. 커스터 장군의 제7기병대가 검은 언덕으로 출동한다.
Sitting Bull은 백인들과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평화조약을 맺고 백인들이 던져주는 선물로 연명하느니 죽음을 택함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유로운 삶이다. 집이나 철도 또는 옷이나 식량, 그 어떤 것도 원치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머니 땅에서 자유롭게 옮겨 다니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앉은 황소의 연설 중에서)

-앨버타의 골드러시-

앨버타에도 금맥이 있다. 부드러운 누런색 금이 아니라 원유와 모래가 뭉쳐진 역청으로 오일샌드(oil sand)라고 부른다. 오일샌드에서 추출하는 원유가 앨버타에 21세기 골드러시를 불러오고 있다. 앨버타 주 고용창출은 캐나다 1위로 100년 전 전세계에서 클론다이크 강으로 채굴업자들이 몰려들듯 원유관련 기술자 기능공들이 전세계에서 앨버타로 몰려들고 있다.
생산현장에서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연방 이민부는 기술이민 쿼터 55,000명 이외에 기능인력 3,000명의 이민을 더 받기로 했다. 이들이 모두 앨버타로 오는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전세계에서 많은 인력이 몰려와 취업비자를 받아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작년 한 해 앨버타 양대도시 캘거리 에드몬톤의 고용창출이 27,200건 과 22,000건이다. 늘어나는 인구로 인해 땅값(공시지가)도 올랐다. 캘거리 에드몬톤 뿐만 아니라 전국에 인구 급증하는 15개 도시 중 앨버타에 10개 도시가 몰려 있다.
앨버타는 2001년 이후 5년마다 인구가 10% 이상씩 증가해 2001년 2,974,807명에서 2006년 3,290,350명으로 300만명이 넘었고 2011년 3,645,257명을 기록했다.
2007년 GDP는 $74,825로 캐나다 평균 $46,441을 훨씬 윗돌았고 대서양 연안주 GDP의 두배에 달해 앨버타 경제가 다른 주에 비해 얼마나 호황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굴지의 원유회사들이 앨버타의 오일샌드에 투자하고 있다. 본국에서도 석유개발공사가 앨버타 북부지역의 유전을 구매했다.
또한 앨버타 주는 원유 거래선 다변화와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해 앨버타 주에서 B.C.주 연안의 태평양까지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아시아 시장으로 원유를 수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오일샌드와 환경오염-

오일샌드의 환경오염과 온실가스 배출은 환경론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다. 그 동안 오일샌드 환경오염에 대해 수많은 연구결과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2010년 12월 캐나다 왕립학회가 발표한 오일샌드 환경보고서는 그 동안 제기된 환경파괴와 보건문제가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밝히면서도 종합적인 환경관리체제가 시급함을 강조했다.
동 보고서는 오일샌드 산업이 아타바스카 강 수질이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수역감시 프로그램의 개선을 요구하고 급성장하는 오일샌드 산업의 규모를 주정부 연방정부 규제와 감시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 보고서의 전체적 환경평가에 대해 앨버타 주정부는 내용이 충실하고 포괄적이며 오일샌드 개발의 중요문제점을 지적한 보고서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캐나다 석유생산자협회는 동 보고서가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연구로 오일샌드 논의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평가했다. 생산자협회는 동 보고서가 지적한 토지훼손 폐수처리, 습지 저수지 훼손에 대한 지적을 받아드리면서도 환경단체와 원주민들이 제기한 환경오염 암 발병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평가를 환영했다.
원주민 측은 보고서의 중립성 객관성 공정성을 받아드리면서도 체계적 자료확보, 환경오염에 대한 장기적 대책을 촉구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차원의 규제 미비, 환경관리 시스템 부재를 지적한 보고서의 내용을 반기며 정부의 효율적 환경감시, 관리 시스템을 요구했다.

-신 골드러시의 꿈과 좌절-

과거와 원주민들이 골드러시 영향을 받아 땅을 내놓고 정든 고향을 떠났듯 앨버타 골드러시도 원주민 생활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준다. 앨버타-B.C.를 연결하는 Northern Gateway Pipeline 공사가 그 대표적 예로 하원에서 통과된 통합법안으로 공사에 장애가 많이 없어졌으나 원주민들은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통합법안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통합법안이 앨버타 골드러시뿐 아니라 캐나다 전역에 퍼져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만큼 지지자들과 함께 Idle no more라는 이름의 시위를 캐나다 전역에서 벌여 하퍼 수상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으나 원주민들이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둘지 의문이다.
21세기 골드러시에 앨버타로 몰려드는 49ers는 과거와 달리 기술과 기능을 몸에 지니고 인터넷과 SNS, 첨단 스마트폰을 통해 생활정보, 취업정보를 빠삭하게 알고 온다. 그래도 생소한 외국생활을 하자니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취업/이민 알선업자들이 정직하고 성실하나 모두가 정직한 게 아니라서 꿈을 안고 건너 온 이주자들의 꿈을 깨뜨리는 경우가 많다. 과거 49ers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왔으나 21세기 49ers들은 보다 나은 삶의 꿈을 안고 온다.
샘 맥기는 금을 찾아 클론다이크에 왔으나 살인적인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개썰매 위에서 죽었다. 뼛속까지 얼어가는 추위 속에 죽어가면서 샘은 썰매꾼에게 “나를 묻으면 죽어서도 추위를 못 견딜 테니 화장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썰매꾼은 약속대로 오두막집 보일러에 샘의 시신을 넣고 불을 댕겼다.
한참 후 문을 여니 샘이 앉아서 “이렇게 따뜻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문들 닫으라”고 말했다. 어느 클론다이커의 죽음이 앨버타 추위 속에서 더 슬프게 느껴지는데 21세기 클론다이커들도 그런 슬픔 좌절 절망을 딛고 꿈을 이룰 것이다.

“각자 출신은 다양했으나 공동생활은 그들을 동질적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깡마르고 강인한 체격이었고, 세월에 단련된 근육, 햇볕에 그을은 얼굴, 솔직한 태도, 맑고 차분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여왕의 개들을 몰고 다니며 적의 가슴에 두려움을 안겨 주었고, 쥐꼬리만 한 급료를 받으면서도 행복했다. 모두 제각기 삶을 즐기고 나름의 업적을 남기고 낭만을 누렸으나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잭 런던 클론다이크 강-


기사 등록일: 201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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