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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서양 세계의 빛과 그림자
처음 이민와서 그 다음 날 저녁 나절에 혼자 다운 타운에 갔었다. 차가 없었으니 버스를 타고 갔었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그럴때도 적용된다. 뭐든지 생소하니 “에드몬톤 다운 타운은 명동하고 어떻게 다를까” 하고 구경 삼아 간 건데 다 저녁 때 혼자 다운 타운에 가서 어슬렁 거리는 것은 추천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슬렁 어슬렁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담배를 한 대 피우니까 어디서 나타 났는지 웬 건장한 남자가 나타나 “담배 한 대 줄래?” 한국 사람이야 원래 담배 인심 좋으니까 한 대 줬다. 그랬더니 커피 마시게 돈을 달라고 한다. 생긴 것도 멀쩡하고 체격도 나 보다 훨씬 크고 건강해 보이는데 왜 나 보고 커피 마실 돈을 달랠까? 쿼터 두 개를 주니 고맙다면서 사라졌다.
저녁 나절 에드몬톤 다운타운은 고스트 타운을 연상 시킬 정도로 으스스하고 황량한 게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명동 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분위기라서 실망하고 돌아 왔는데 그 날 내게 담배 달라고 한 사람이 알고 보니 노숙자, 걸인이었다. 그 후에도 다운 타운 가보면 노숙자, 걸인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에드몬톤 한인회관을 중심으로 노숙자, 걸인들이 많은데 한인회 집행부가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 사회적 약자들은 돕고 싶은 마음에 그런 곳에 한인회관을 마련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노숙자, 걸인들을 홈리스 피플, 홈리스(homeless people, the homeless)라고 하는데 원주민들도 있고 간혹 소수민족들도 눈에 띄지만 있지만 주류는 역시 백인들이다. 다운타운 뿐 아니라 화이트 에비뉴에도 젊은 10대 후반 20대 초반 백인 남녀가 삼삼오오 거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잔돈푼 구걸하고 있다. 담배 한 대를 몇 명이 돌려 피면서. 서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등 북미 대륙을 일러 선진국,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사회 안전망이 작동하는 복지사회라고 하는데 (미국은 약간 다르지만) 수 많은 홈리스 피플들은 뭐란 말인가? 별 다른 희망없이 낙오된 인생을 사는 저들은 누구일까?

-로마와 기독교-

서양세계를 이야기 할 때 그리스, 로마(그레코로만) 기독교 중세 르네상스 계몽주의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서양세계의 정신적 기본구조는 그레코로만에서 비롯되었다. 로마는 헬레니즘이라는 그리스 정신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여 신들의 역할 기능 영역조차 그리스 신들과 똑 같고 이름만 로마식으로 바꿔 부른다.
다신교 사회를 반영하듯 그리스 로마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방적이고 합리성을 존중하는 열린 다원주의 사회로 속주 속국에도 자율성을 보장해 주었다. 이런 로마 사회에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와 들어와 종교로서 공인을 받고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국교가 되었다.
로마는 시민정신과 시민으로서의 명예, 자긍심이 있었다. 귀족들의 자기헌신인 노블리스 오블리쥬도 명예, 자긍심에서 나왔다. 현실세계에 바탕을 둔 이런 로마정신은 내세를 중요시하는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로마 정신을 무너뜨리고 국교가 되었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후 3년만에 동 서로 갈라지고 80년 후에는 서로마가 망했다는 것이다. 동로마제국은 1453년까지 존속했지만 서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지 80년만에 망한 로마정신과 기독교의 인과 관계는 그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가 더 필요할 것이다.

-서양 정신 세계와 기독교 절대성의 붕괴-

로마가 망한 후 중세를 지배한 것은 게르만과 기독교 도그마다. 유일한 절대자를 믿는 기독교는 엄격하고 냉정하고 질서정연하게 하면서도 야만성을 갖고 있는 게르만족의 문화와 잘 어울렸다. 게르만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은 기독교의 수호자였다.
하늘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심판하는 신의 법이, 머리카락 하나까지 세고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신의 눈이 현세는 물론 내세까지 두루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등장으로 절대적인 기독교 신의 권위가 무너져 내렸다.
신의 법을 대신한 것은 인간의 법, 세속의 법이다. 세속의 법이 전지전능한 신의 법과 다른 것은 불법이나 잘못이 실제로 적발되고 처벌 될 때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즉 신의 법, 신의 심판은 내세까지 이어지는 피할 수 없는 심판이지만 세속의 법, 세속의 심판은 걸리지만 않으면 얼마던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속법의 지배하에서 살아가자면 준법정신, 시민정신, 품성을 지켜주는 교양, 자기절제등의 교육이 필요한데 이런 교육은 책 몇 권 읽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단기간에 걸쳐 되는 것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자기기준을 세워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가지 사정상, 주로 개인의 사정이겠지만 자기기준을 세워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품성 교양을 갖추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면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라는 유혹에 빠져 성인이 되어도 사람 노릇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서양사회의 개인주의-

그래서 서양 사회는 법과 규율, 이성에 바탕을 둔 개인주의로 중세에 무너져 내린 기독교 절대성을 극복했다. 인간 하나 하나를 독립된 개체로 보는 개인주의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다.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남이 무슨 짓을 하던 내게 피해가 없으면 참견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남을 의식하고 살 필요가 없다.
이런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 우당탕 탕탕 부부싸움을 해도 뛰어 가서 뜯어 말리는 대신 경찰에 신고를 한다. 개인주의가 자유롭고 개방적 사회를 유지하는데는 필요하지만 남의 일에 나서는 게 아니라는 생각은 개인적 사회적 갈등이나 범죄의 해결을 지정된 공권력에 의지하게 되어 있으니까.
이런 개인주의적 사고는 남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가족간에도 적용 되는데 “남이 무슨 일을 하던 상관 않는다”는 생각을 뒤집어 보면 “남이 나의 삶에 불편을 주던가 방해는 하는 것을 용납 못한다”는 의미도 있다.
오래 전에 본 영화 “7월4일 생”에 보면 주인공 론 코빅이 월남전에 참전했다 하반신 불구가 되어 돌아온다. 절망에 사로잡힌 론은 자포자기 한채 술에 쩔어 사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모친에게 폭언을 퍼붓는다. 그것을 보던 론의 부친은 론에게 다가가 아들을 위로하면서 “집을 떠나 있는 게 좋겠다.”고 조용히 말한다.
아버지 가슴에 안겨 통곡하는 론은 바로 다음 날 짐을 챙겨 맥시코로 떠나는데 생판 모르는 지나가는 장애인을 도와줄 망정 다 큰 아들이 행패 부리는 것은 못 봐주는 것이 서양 사회다. 불구가 된 아들을 떠나 보내는 부모 심정이 오죽하랴마는 한국인 같았으면 전장에서 하반신 불구 되어 돌아 온 아들을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 아들이 술에 취해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린다 해도.

-가정에서의 개인주의-

이성에 입각한 합리성, 성숙한 시민정신, 자기절제가 미덕인 서양사회에서 자녀들이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성인이 되어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꾸려 나기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덜 성숙해 혼란에 빠지면 젊은 나이에 실패자로 낙인 찍히기 쉽다. 일단 한번 찍히면 주위에서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는다.
더구나 성인이 되면 부모 떠나 자립하는 사회에서 부모와 같이 살지도 못하고 경제력이 있어 월세 낼 형편도 안되고 작은 일에도 정신적으로 충격 받고 받아주는 곳도 없고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곳도 없으면 그런 젊은이들이 가는 곳은 뻔하다. 길거리에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 향해 거리에서 생활하며 “Changes for coffee” 해서 술과 마약을 위로 삼아 살아가는 방법 밖에 없다.
일단 이런 삶에 발을 들어놓으면 본인이 대단한 결심을 하기 전에는 이 생활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평생을 그렇게 살기 십상이다. 이런 젊은이 들이 가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대개는 부모 형제들이 있지만 거리에서 살아가는 것이 부모 형제들에게도 편하고 본인에게도 편한 것이다.
이런 생활을 하는 서양 청년들을 단순히 “일 하지 않아도 먹여 살리니까”이라던가 “법이 물러서”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그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차원을 떠나 그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는 인격과 행동방식을 체득하지 못해 주류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그렇더라도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떳떳한 시민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있고 사회 전반적 수준이 한국보다는 높다.
서양사회는 소수의 낙오자가 있지만 대부분이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 맞춰 살아가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에 가까운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온정주의-

어느 40대 아들이 돈 벌이도 안하고 취직도 안하고 70대 부모에게 빌붙어 살면서 부모에게 사업자금 내놓으라며 걸핏하면 술에 취해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부모를 폭행했다. 그 아들은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구속되었는데 재판장에 나타난 부모는 판사에게 아들 관대하게 처벌해 달라고 울면서 호소하는 게 한국 부모이다. 서양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온정주의 사회에서는 직업 없이 빈둥거리며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온다 해도 엄청난 잘못만 하지 않으면 대부분 가족들이 감싸주지 내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한국 같은 온정주의 사회에서는 가족, 형제, 친구가 주변에 있어 직간접으로 간섭하고 참견하기 때문에 큰 틀을 벗어나 엄청난 잘못을 하기 어렵다. 제 때 취직을 못한다던가 해도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기 어렵다.
한국사회에는 한국 특유의 체면이란 게 있어 종교심이 없고 세속의 법 지배를 받는다 해도 남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라는 의식이 서양보다는 덜하다. 그러나 온정주의 사회의 병폐는 남의 잘못에도 관대해 특히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것을 용납한다. 그러나 술을 핑계로 감정조절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증거인데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온정주의 그늘에서 기생하고 있다.
온정주의가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도 있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회전체가 무책임과 핑계에 묻혀 공정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기사 등록일: 201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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