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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나는 무엇인가
작성자 외노자     게시물번호 18322 작성일 2024-09-05 08:43 조회수 361

 

의술의 발전이 놀랍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기이식을 하기 위한 조건이 무척 까다로웠는데 이제는 혈액형이나 성별 상관없이 간이나 신장이식을 해 버린다.

 

이종간 장기이식도 시도되고 있다. 원숭이에게 돼지 신장을 이식하여 2년 이상 생존에 성공했고 최근엔 사상 최초로 돼지 신장을 인간에게 이식해서 두 달간 아무 탈 없이 소변을 만들어 냈다. 비록 환자는 두 달 만에 숨졌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조만간 돼지 간, 심장, 신장 등등의 장기가 인간에게 이식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돼지 심장을 이식 받은 사람은 100% 인간인가? 한 10% 정도는 돼지로 봐야 하나? 순수한 인간의 정의가 어떻게 돼야 하지?

 

장기이식뿐만이 아니라 사지이식도 가능하다. 인도에서 사고로 두 팔을 잃은 소녀는 타인의 두 팔을 기증받아 다시 정상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두 팔의 공여자는 자전거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남성이었다. 그런데 수술 이후 이 소녀는 100% 자기 자신인가? 소녀의 성 정체성은 100% 여자인가?

 

너무 까탈스러운 질문 같다. 물론 그녀의 의지대로 두 팔이 움직이므로 소녀 100% 맞다. 또한 원래 털이 덥수룩하고 까무잡잡했던 두 팔이 점점 소녀의 몸과 융화되며 피부색이 옅어지고 털이 없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니 소녀는 100% 여자임이 틀림없다.

 

좀 더 극단적인 경우로 가 보자.

 

1930년대부터 러시아 과학자들은 이상한 실험들을 하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개의 머리를 잘라서 다른 개에게 붙인 것이다. 머리가 두 개 달린 개는 상당 기간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1970년대에는 원숭이 목을 잘라서 서로 몸을 바꿔 버린 적도 있다. 여러 번 시도했는데 최소 3시간에서 길게는 며칠 동안 살아남은 적이 있다.

 

최근 들어 머리이식 수술은 의학계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주제가 되었다. 최근 중국에서도 원숭이 머리 이식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며 약 석달 전엔 미국의 한 스타트업 기업이 인간 머리이식 수술을 정확하게 수행한다고 주장하는 AI와 로봇을 발표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수술을 가능하게 하는 법 제도의 마련이다.

 

실제로 9년 전에는 러시아에서 머리이식 수술이 이루어질 뻔 한 적도 있다. 사지마비로 고통받는 과학자가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고 담당 의사는 90%의 성공 확률을 장담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수술이 시행될 찰나, 환자의 심경 변화로 수술이 취소되었단다.

 

이 수술이 핫한 이유는 잠시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전신에 암세포가 퍼진 시한부 환자는 머리이식 수술을 통해 뇌사자의 몸을 통째로 이식 받아 여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상한 생각이 시작된다. 70대의 시한부 환자 조는 30대 뇌사자 톰의 몸을 이식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은 사람은 조인가? 아니면 톰인가? 나는 일단 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문은 계속된다. 조의 나이는 70대인가? 아니면 30대인가? 톰의 나이가 30대이므로 40년 후에 70대가 된다. 하지만 톰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조의 머리는 110 살이 된다. 이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더욱 이상한 생각을 해 보자. 30대의 몸을 얻게 된 조는 성관계를 하여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 아이는 조의 아이인가? 아니면 톰의 아이가 되나? 여기서부턴 나도 헷갈린다. 그 아이는 틀림없이 톰의 DNA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성관계를 한 자는 톰이 아니고 조였다. 나는 더 이상 판단을 못 하겠다.

 

1996년에 사상 최초의 복제양 돌리가 탄생했다. 복제 과정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암컷 양에게서 난자를 채취해 핵을 제거한다. 다 성장한 양의 체세포에서 핵을 뽑아낸 후 그 난자에 주입한다. 전기 충격을 주면 그 난자는 자기가 지금 막 수정된 걸로 착각하여 세포 분열을 하기 시작한다. 이 가짜 수정란을 대리모에게 이식한다. 이렇게 복제양 돌리가 탄생됐다.

 

동물 복제는 이제 일반적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애완견이나 고양이가 있고, 그 애완동물의 죽음 이후를 견딜 자신이 없다면, 아주 손쉽게 애완동물 복제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회당 단돈 5천만 원에서 8천만 원 정도면 애완견의 평균 수명 15년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사랑하는 반려견과 여생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다.

 

연구 윤리 따위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같은 방식으로 인간 복제도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나 자신을 복제한다고 상상해 보자.

 

상상 속의 나는 부자다. 나는 큰 돈을 주고 모잠비크의 한 흑인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하나 샀다. 그 여성은 배란촉진제를 맞고 산부인과에서 복강경으로 난자 몇 개를 제공한다. 나는 냉동된 난자를 가지고 러시아로 간다. 러시아 의사들은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다. 그리고 면봉으로 긁어낸 나의 입천장 세포 중에서 핵을 하나 추출하여 난자에 주입한다. 역시 큰 돈을 주고 금발의 러시아 여성을 대리모로 산다. 러시아 대리모에게 그 난자가 착상되고 열 달 후에 아이가 하나 탄생하게 된다. 그 아이는 흑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니고 몽골계 아이다. 바로 나 자신이다. 아니 나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다. 자연적인 쌍둥이와 다른 점은 이복 형제라는 것과 나이 차이가 무지하게 많이 난다는 것 뿐이다. 바로 그 아이는 나와 100%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지만 나 자신은 아니다.

 

DNA가 똑같다고 내가 될 수는 없다. 나의 본질은 내 두뇌다. 비록 DNA 설계대로 내 두뇌가 생성됐지만 지금 현재의 나는 그간 살아온 경험, 만났던 사람, 읽었던 책들, 밤새워 했던 공부들 등등이 만들어낸 두뇌 속 뉴런들의 네트워크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내가 오늘 책을 열심히 두 시간 읽었다면 어제의 나와 또 틀려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라는 것은 지난 과거의 경험과 기억이다.

 

여기서 아주 못된 상상이 시작된다. 저놈은 나와 똑같은 DNA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아니다. 그저 아주 어리디 어린 일란성 쌍둥이 이복 동생일 뿐이다. 나는 나이가 들었고 신체는 노쇠하기 시작했다. 의술의 발전은 머리 이식을 넘어 이제 두뇌 이식이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바로 위의 복제된 클론을 죽이고 나의 두뇌를 거기에 이식하면? 짜잔~ 이런 식으로 나는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자, 이제 그만 놀고 본론에 들어가자.

 

삼체의 외계인들은 엄청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함대는 무려 광속의 1%로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불과 400년 후 지구에 도착하게 된다. 지구에서는 상상도 못할 과학 기술력으로 그들은 소폰을 만들어 내서 지구의 모든 인터넷 정보를 빼냈음은 물론 삼체의 외계인을 저지하려는 모든 시도를 손바닥 보듯 들여다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DC(Planetary Defense Council) 는 그들의 함대를 중간에서 정찰하고자 시도한다.

 

처음에 지구는 사람을 한 명 냉동시켜 보내려 했다. 하지만 지구의 기술로는 어떤 방법을 써도 광속의 1%로 가속하는게 불가능했다. 원작에선 우주공간에 핵폭탄 1천 개를 탐사선 진행 방향으로 일렬로 배치한 후 순차적으로 터트려서 탐사선을 가속시킨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속의 1%는 불가능했다. 결국 무게를 최대한 줄여야만 그만한 가속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전권을 위임받은 PDC는 “오직 전진” 을 외치며 미친 짓을 시작한다. 시한부 생명이면서 천문학과 물리학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의 두뇌를 적출하여 냉동시켜 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감시하고 있는 소폰에게 요구한다.

 

“네놈들도 실제 지구인이 궁금하지? 이 뇌를 받아서 이 사람을 재생하여 살려내라!”

 

‘결혼 출산 육아’ 시리즈의 ‘체외수정, 인공 수정, 시험관 아기 그리고…’ 편에서 보았다시피 이미 인공 자궁도 상당히 연구가 진척 되고 있다. 그러니 지구보다 까마득히 발전한 삼체의 기술력으로는 사람 하나 재생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게 미래 인류의 우주 여행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주 여행자는 두뇌만 냉동하여 우주선에 탑승하는 것이다. 수백 년이 걸려 도착한 다른 태양계의 행성에서 뇌세포 단 하나의 핵으로부터, 인공 자궁을 사용하여 복제양 돌리를 만들 듯 클론을 만들고 나서, 지구로부터 온 두뇌를 해동해서 이식하면 된다.

 

여튼 결론은, 광속 1%를 달성하기 위한 인류의 지랄 발광이 결국 냉동된 뇌 하나를 보낸다는 결정은 상당한 과학적 신빙성이 있다는 거다.

 

아유, 재밌었다.

 

(계속)

 

삼체 The Three Body Problem

 

목차

 

1) 모택동 때문에 외계인이 쳐들어오는 이야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4/1.html?m=1

2)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4/2.html?m=1

3) 총균쇠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4/3.html?m=1

4) 개미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4/4.html?m=1

5) 폰 노이만과 어둠의 숲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4/5.html?m=1

6) 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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