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오른 ‘스트러글 밀’…햄버거 헬퍼까지 다시 뜬다 - 식품 물가 급등 속 캐나다 가계의 불안 심화, 4분의 1은 식량 불안 겪
(사진출처=CBC)
(안영민 기자) ‘스트러글 밀(Struggle Meal)’이라는 단어가 북미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값싼 식재료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음식으로, 최근 물가 급등 속에 저렴한 식사법을 찾는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라면에 값싼 재료를 더해 ‘30센트 만찬’을 꾸리거나, 문어 모양으로 자른 소시지를 ‘빈곤의 상징’처럼 소개하는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일부 요리 블로거는 참치 누들 캐서롤 같은 옛 레시피를 ‘고전적이면서도 맛있는 스트러글 밀’로 다시 소환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저가 가공식품의 판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1971년 출시된 박스 파스타 제품 ‘햄버거 헬퍼(Hamburger Helper)’는 올해 미국에서 매출이 전년 대비 14.5% 급증했다. 매크로니 앤 치즈, 즉석 건조 혼합식품, 캔 칠리, 건조 쌀 제품 등도 두 자릿수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캐나다에서도 2023년 1분기부터 2025년까지 통조림 생선, 콩, 쌀, 파스타, 냉동 육류와 피자 등 포장·냉동 가공식품 판매가 10.4%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위기의 징후라고 지적한다. 퀸스대학의 일레인 파워 교수는 “영상 속 유머와 공유 문화가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 사람들이 필요한 음식을 살 여력이 없다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의 2025년 식품 물가 상승률은 3~5%로 전망되며, 4인 가구 식비는 평균 1만6,833달러로 전년 대비 최대 800달러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 8월 캐나다 식료품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했고, 식품은행캐나다에 따르면 캐나다인의 4분의 1이 식량 불안을 겪고 있다.
현장 체감은 더욱 심각하다. 미시소가 식품은행은 지난해 방문객 수가 50만 회를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20% 증가한 수치다. 맥매스터대 윌리엄 허긴스 교수는 “캐나다 경제가 약화된 가운데 미·캐 무역 갈등까지 겹치며 상황이 악화됐다”며 “푸드뱅크와 급식소 이용 급증은 사회안전망 붕괴를 보여주는 신호탄”이라고 경고했다.
소비자들의 검색 패턴도 이를 반영한다. 핀터레스트 캐나다에서는 지난 1년간 ‘예산형 스트러글 밀’, ‘가난할 때 해먹는 35가지 식사’, ‘대공황 시대 레시피’ 같은 게시물이 인기 상위권을 차지했다. 구글 캐나다 검색어 역시 ‘스트러글 밀’, ‘예산형 식사’가 앨버타, 브리티시컬럼비아, 온타리오 등에서 급증했으며, ‘햄버거 헬퍼’는 이보다 더 높은 검색량을 기록했다. 온라인에서는 “맥앤치즈 vs 케첩 파스타 vs 시리얼”을 두고 ‘최고의 스트러글 밀’을 겨루는 밈까지 퍼지고 있다.
문제는 값싸고 가공도가 높은 식품일수록 영양가는 낮아진다는 점이다. 파워 교수는 최근 온타리오주 한 사과농장에서 500파운드(약 226kg)의 사과가 도난당해 가방과 유모차 반입을 금지한 사례를 언급하며 “사과조차 훔칠 정도로 상황이 절박하다. 가공식품은 값은 싸지만 영양은 떨어지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물가와 경기 둔화 속에 저가·고열량 식사가 주식으로 자리 잡는 현상은 단순한 생활 트렌드가 아니라 캐나다 사회의 균열을 보여주는 지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