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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근의 기자수첩) 신정공화국(神政共和國)의 끝은 어디인가? - 과거의 영광은 어디로?

사진: 중앙일보, 이란 히잡 시위 
구약성서 에스라 1장은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로 시작된다. 바사왕 고레스는 페르시아 황제 키루스 2세다. 페르시아 연합군은 바빌론을 함락하고 벨사살 왕을 죽였다. 하박국, 스바냐, 다니엘 등 구약의 예언자들이 저주하던 바빌론은 B.C.539년 그렇게 멸망했다. 키루스 2세는이민족에게 관용정책을 베풀었다.
포로로 잡혀와 “바빌론 강가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던” 유대인들, 고달픈 노예생활 중에 오매불망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라고 노래하던 그 유대인들에게 키루스2세는 은전을 베풀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고 바빌론에 남아서 살고 싶은 사람들은 살도록 했다.
느브갓네살이 약탈해온 보물도 다 돌려주고 성전 재건에 필요한 돈과 물자도 주었다. 쇠사슬에 묶여 바빌론으로 압송되어 눈알이 뽑힌 마지막 왕 시드기야와 함께 끌려간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키루스2세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페르시아가 지금의 이란이다. 세상 살면서 큰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받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럴 때 배은망덕이라고 한다.

이슬람 신정공화국, 이란

중동국가들은 이스라엘 제외하고 국교가 이슬람이고 산유국이고 절대왕정 국가들이다. 그러나 이란은 다르다. 대부분이 이슬람 수니파인데 이란은 시아파다. 이란은 공화국으로 4년마다 국회의원 대통령을 선출한다. 이슬람 국가는 남녀 차별이 심한데(그들은 여성 보호라고 하지만) 여자가 부통령을 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민주주의 같으나 대통령 위에 최고 종교지도자가 있는 이슬람 신정 공화국으로 군 통수권, 사법, 행정 등 모든 권력이 최고 지도자에 집중되어 있고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린다.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최고 지도자는 임기가 없는 종신직이다. 민족도 셈족이 아니라 이란은 페르시아인이 주종을 이룬다.

혁명수비대라는 군사조직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혁명은 이슬람 혁명으로 혁명을 지키고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이란은 정규군보다 혁명수비대가 정예부대로 팔라비 2세를 축출하고 권력을 잡은 호메이니 최고 지도자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군부를 믿지 못해 친위대 격인 혁명수비대를 조직했다. 혁명수비대는 이란의 무역, 금융, 에너지 산업 등 핵심산업의 인프라를 독점 지배하며 국가 기간산업을 직접 운영하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국민들은 경제난국에 시달리는데 중동의 시아파 무장세력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대주며 대부 노릇을 하고 있다. 혁명수비대는 이란 경제 흐름을 왜곡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란 민중의 경제적 고통의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서구의 경제제재에 있지만 혁명수비대의 경제 흐름 왜곡도 경제적 고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란이 신정공화국이 된 것은 1979년이다. 그전에는 왕조국가로 팔라비 왕조의 팔라비2세가 왕(샤)이었다. 당시 이란은 친미 국가로 이스라엘과 더불어 미국의 중동정책에 두 기둥 역할을 했다. 팔라비2세는 세속 국가를 표방하며 백색혁명으로 사회전반을 개조했다. 그러나 급진적 서구화 정책은 전통적 이슬람 사회의 반발을 샀다. 예를 들면 이슬람 사원이 토지의 대지주였는데 토지개혁으로 강제 몰수하여 대중들에게 나눠주어 성직자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여성들의 참정권 피선거권을 인정했다. 히잡과 차도르 착용을 금지했고 여성의 군복무를 허용했다. 여성해방정책 역시 이슬람 세력을 적으로 돌리기에 충분해 이슬람은 “우리의 딸들을 창녀로 만들 것인가?”라고 분개했다.
이란의 서구화 정책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서구로 유학을 갔다. 이 젊은이들은 서구식교육을 받으며 팔라비 왕조의 권위적 독재 정치, 부패, 무능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겼다.

이란의 종교지도자 호메이니는 이슬람의 절대 지지를 받으며 팔라비 왕조에 저항했다. 이념과 종교를 초월해 학생, 노동자, 중산층, 농민, 좌파 등 모든 반 팔라비 세력은 호메이니 지도 아래 하나가 되었다. 이란 정부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호메이니는 파리에서 종교혁명을 원격 조종했다. 프랑스는 1946년 제 4공화국 헌법으로 망명자를 보호한다. 요즘에는 이민, 망명법을 강화하고 있지만 한때 전세계 망명자들이 프랑스로 몰려들어 보호를 받으며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싸웠다.

국민적 저항에 굴복해 팔라비2세는 이란을 떠나 이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다 이집트에서 죽었다. 그의 아들 레자 팔라비는 미국에 살고 있다. 정권을 접수한 호메이니는 국민투표에서 98% 지지를 얻어 이슬람 신정 공화국을 선포하고 종신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1979년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호메이니를 선정했다. 그러나 20세기에 탄생한 신정공화국은 시작부터 문제가 많았다.

이슬람 원리주의자 호메이니는 솔선수범해 종교 계율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뿐 아니라 관리들, 공무원 모든 국민에게 종교 계율을 지키라고 강요하고 위반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혹하게 처벌했다. 종교 계율은 개인의 자유의지로 지켜야지 타인의 강요에 의해 지킨다면, 마지못해 억지로 지킨다면 계율이 아니라 속박이다.
계율 엄수, 종교적 속박은 호메이니가 죽고 2대 지도자가 된 알리 하메네이 치하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종교적 속박과 가혹한 처벌은 사회적 통제, 정치적 억압으로 이어졌고 국제 인권단체들은 가혹한 처벌을 비판했다. 핵 개발과 테러단체 지원으로 인한 국제 고립과 경제제재가 더욱 심해졌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이란의 대규모 시위 시작은 임계점에 도달한 경제위기 때문이지만 근본적 원인은 그동안 쌓여 온 신정공화국의 구조적 모순이 폭발한 것이다.

정, 교 분리(政敎) 가 정답 아닌가?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헌법 20조2항에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 나라들이 헌법에 정교분리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국가가 종교를 간섭하는 행위는 헌법 위반이고 종교가 정치행위에 끼어드는 행위 역시 헌법위반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특검 대상이 된 통일교나 신천지가 선거운동에 영향을 미친 행위는 헌법위반으로 철저히 조사하여 그 정당은 해산되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정교분리의 원칙이 이슬람 국가에서는 상식이 아니고 왜 이란 같은 신정국가가 생겼을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유대교는 논외로 치고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라는 속담대로 700년 늦게 출발한 후발주자 이슬람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 약 18억명의 신자가 있고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북 아프리카 포함) 동유럽에 이슬람 국가들이 산재되어 있다. 신도수 1위는 기독교(천주교+개신교)로 약 25억명의 신도가 있는데 이 수치는 머지않은 장래에 뒤집힐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기독교국가들은 정교분리를 헌법으로 규정하는데 이슬람 국가들은 정교일치 혹은 종교가 정치의 위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슬람 부족주의, 여성 경시 등 후진적 제도와 제정일치 고대사회 풍습을 아직도 유지하기 때문일까?

기독교와 이슬람은 출발부터 달랐다. 마태복음 22장21절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말로 세속권력과 신앙의 영역을 구분했다. 그러나 이 진리가 구현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고 인적 물적 희생 역시 엄청났다. 기독교 공동체는 로마에 종속되어 박해를 견뎌내 국교가 되었다.
그후 종교개혁을 거치며 같은 신을 믿는 천주교 개신교가 전쟁을 치러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냈다. 기독교는 종교전쟁이라는 참혹한 학습효과를 통해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마태복음의 진리를 뼈저리게 깨달었다. 그후 계몽주의의 철학적 사고와 시민혁명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공고히 만들었다.

이슬람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종교 창시자, 입법자, 정치지도자, 군사지도자로 구약시대 모세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이슬람 공동체는 신앙공동체이자 국가로서 이슬람 율법은 단순한 종교적 규범이 아니라 신이 내린 법으로 형법, 민법, 상법 등 모든 법을 망라한다. 이슬람은 종파 갈등(수니파 시아파)은 있지만 종교전쟁으로 나라가 붕괴되는 경험을 하지는 않았다.
이슬람 문화권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아 서구의 가치가 강제로 이식되었다. 이 역사적 체험은 중요하다. 이런 역사적 체험은 세속국가로 발전은 이슬람 전통을 떠나 서구를 추종하는 정체성 배신으로 간주되었다.

팔라비 왕조의 백색혁명이 대규모 민중시위로 몰락한 것도 그런 맥락이고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의 세속주의도 그렇게 실패했다. 터키가 세속국가로 성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으나 케말 파샤의 세속주의는 터키의 근대화를 이룬 혁신적 개혁으로 높이 평가받으면서도 대중의 합의가 아닌 국가주도의 권위주의적 강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터키의 양극화,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구조적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세속국가는 서구의존, 독재라는 구도가 형성되어 시아파 수니파를 막론하고 대중적 반대에 부딪힌다.

트럼프가 이란에 병력을 보낸다면

트럼프가 이란의 신정(神政)을 끝내려고 파병을 할지 말지는 트럼프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트럼프가 파병을 해서 신정을 끝낸다면 그 결과는 최악이 될 것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이란에서 외세개입은 항상 결과가 나쁘게 끝났다. 1953년 모사데크 총리는 에너지를 국유화해 외국기업을 추방하고 실업수당, 산재보험, 토지개혁 등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왕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입법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팔라비 국왕은 CIA, 영국 정보부와 공작을 해 모사데크를 축출했다. 그후 팔라비 국왕은 미국에 의존했다. 만약 신정체제가 끝난다면 미국에 망명중인 레자 팔라비가 돌아와 임시방편으로 왕정복고가 이뤄질 텐데 이란 민중이 원해서가 아니라 왕정복고 이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세를 등에 업고 들어오는 왕정복고는 또다른 이슬람 혁명을 불러올 뿐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란뿐 아니라 민주화, 사회개혁은 내부 역량으로 지속 가능하지 외세에 기대면 반드시 실패한다. 갑신정변이 3일천하로 끝난 비극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일본이라는 외세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서울 갈때마다 우정국에 들러 홍영식 초상화 앞에서 “대감은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왜 그렇게 서둘렀소?”라고 묻는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엄혹한 군사독재를 겪으며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내부역량이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스페인, 체코, 폴란드, 대만도 같은 경로로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란 민중의 마음은 신정체제에서 떠났다. 여성들의 히잡 시위는 신정체제가 종교적 정당성을 상실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란은 이슬람 국가중에서도 가장 견고한 비민주적 통제국가로서 혁명수비대가 군, 정보, 경제를 장악하고 있고 정치 사법 행정이 최고지도자 손에 있어 몇번의 대규모 시위로 정권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이란은 마치 유신독재 시대를 연상케 한다. 반정부 인사들은 소리 소문 없이 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가 고문당하다 죽거나 감옥 가고 경찰이 청년들 잡아 장발 단속하고 길거리에서 젊은 여자들 스커트 길이 재는 통제된 사회에서 우리 세대는 유신철폐를 외치면서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절망에 짓눌렸다. 그러나 그 바위가 깨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란 민중들은 외세에 기댈 생각 말고 민중의 역량을 키워 민주주의와 개혁을 이뤄야 한다. 비록 그 길이 멀고 험하고 고통스럽더라도.




기사 등록일: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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