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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근의 기자수첩- 왕조의 멸망, 경술국치

 
1910년 8월 29일은 조선왕조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강제로 병합된 날이다. 그해가 경술년이라 경술년에 국가가 치욕을 당한 날이라 해서 경술국치라고 부른다. 어느 한 국가가 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경술국치는 조선왕조가 갖고 있던 구조적 모순, 제국주의 침략 야욕, 열강들의 국제 이해관계가 한데 어울어진 결과였다.
조선의 멸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입체적 접근이 필요한데 친일파들, 점잖게 표현해서 친일파지 사실은 민족 반역자, 매국노가 맞는데, 이 자들은 “우리가 못나서” “조상들이 못나서” 나라 빼앗겼다고 간단히 설명한다. 이 같은 자조적, 자기비하적 표현은 일제가 세뇌시켜 심어준 “조선인 열등론”이 내면화된 결과다.

더구나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처단하지 못한 우리의 현대사 때문에 이런 자들의 생물학적 후손들이나 이념적 후손들이 ‘조선인 열등론’에 동조하며 일본이 우리를 근대화 시켜준 은인이라고 고맙게 여기고 있다. 친일 청산이 안된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으로 이런 사회에서 사회정의가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조선왕조뿐 아니라 세계역사를 보면 아무리 강성했던 제국이라도 붕괴될 때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들이 있다.

첫째, 도덕적 해이와 관료사회의 부패: 매관매직이 일상화되고, 공적 시스템이 사적 이익을 챙기는 도구로 전락한다. 능력 있는 인재 대신 문벌을 앞세운 무능한 인물들이 요직을 독점하며, 법과 원칙이 상실된다.

둘째, 안일한 안보 의식과 군사력 약화: 오랜 평화나 내부 싸움에 매몰되어 외세 침략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정략적으로 이용한다. 군대의 사기가 떨어지고 무기와 방어 체계가 부실해져, 외세의 침략이나 재난이 가해졌을 때 일격에 무너진다.

셋째, 빈부격차 심화와 사회적 균열: 특권층의 토지, 부의 독점이 극에 달하고, 과도한 세금과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중산층과 자영농이 몰락하면서 사회 불만과 폭동이 일어난다.
넷째, 진영 논리와 정치적 극단화: 국가적 위기에서도 정적을 제거하는 데 몰두한다. 타협과 협력이 사라지고 '상대방의 절멸'을 목표로 하는 피의 숙청과 파벌 싸움이 격화되어 정부의 자정 능력이 상실되어 망국의 길로 들어선다.

조선 개국과 정도전

조선왕조의 멸망도 위의 4가지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4가지 현상은 국가 번영기에는 암 세포처럼 숨어있다 쇠퇴기에 들어서면 나타나 망국을 부채질한다. 마치 인간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암이나 다른 병이 나타나 건강을 갉아먹다 죽듯이.
그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멸망은 진영논리과 정치 극단화로 생기는 국론분열이다. 로마 공화정도 벌족파와 민중파의 갈등이 내전으로 발전해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국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년 제국 로마도 국가적 위기 앞에 단합하지 못하고, 종교적, 민족적 차이를 이유로 상대를 배척하며 내부적인 정치 싸움에 몰두하다 스스로 무너진 대표적인 사례다.

조선은518년을 존속했던 왕조다. 조선왕조의 밑그림을 그린 사람은 정도전이다. 그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꿨다, 왕 과 사대부가 권력을 분점하고 학식과 덕망을 갖춘 유능한 재상이 사대부에서 나와 주나라 주공처럼 덕치로 세상을 다스리는 사회였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왕과 사대부가 권력을 나누고 왕권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정도전의 머리에서 나왔다.

서경,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의정부서사제, 경연, 구언 과 상소 등이 제도적으로 왕권을 제한하고 독재를 견제했다. 그래서 조선을 군약신강(君弱臣强 왕이 약하고 신하가 강한)의 나라라고 했다. 정안군 이방원, 수양대군 이휘는 군약신강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어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으나 이미 정해진 제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조선왕조에서 연산군 빼고는 어떤 왕도 정해진 제도를 벗어나 왕권을 휘두르지 못했다.

정도전의 설계는 왕의 폭정과 독재를 막고 사대부들의 공론(여론)에 의해 움직이는 당대 기준으로 매우 선진적인 제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가 훌륭해도 제도는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조선 정치제도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다. 현대적 의미의 언론 자유와는 결이 다르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역적으로 몰려 고문 받아 죽으면서도 왕 앞이라고 주눅드는 일이 없이 할말 다 하고 죽었다. 성리학적 관점이 지향하는 바가 왕명과 다르면 왕이 틀린 것이다.

제한된 왕권과 성리학적 정의

조선의 사대부들은 정치를 '성리학적 정의(正義)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정치가 도덕과 이념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타협은 곧 '불의와의 야합'이 된다. 상대방을 '설득하고 타협하는 정치적 동반자’가 아니라 '교화되거나 척결되어야 할 사악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타협의 문이 닫혀버렸다.
왕권을 제한하는 제도로 왕권이 약해지자 그 자리를 신하들 집단(붕당)이 채웠다. 조선 중기에 붕당이 생긴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붕당이 생겨 임진왜란 같은 국가적 과제 앞에서도 내편을 지키고 상대방에게 책임 넘기기에 급급했다. 붕당 싸움을 중재하고 정국의 안정에 힘을 기울여야 할 왕권은 약했다. 왕들은 고작해야 환국(정계 개편)이나 외척 등용으로 맞섰다. 조선 중기에 시작된 붕당 정치는 노론, 소론, 남인, 북인으로 갈라졌다. 이처럼 국론이 갈라져 왕조의 건강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국론분열과 멸망

갈라진 국론 때문에 대동법 같은 백성에게 정말 필요한 민생법안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는데 100년이 넘게 걸렸다. 특히 송시열 계열에서는 극력 반대했다. 대동법뿐 아니라 명분과 도덕으로 갈라져 타협과 공존이 아닌 “나는 선, 너는 악”이라는 흑백논리로 다투다 국가적 과제나 민생은 뒷전으로 물러나 국력이 쇠퇴해 멸망하는 계기가 되었다.
붕당 중에서도 노론이 오랫동안 정권을 잡았다. 조선 왕조가 몰락할 때 나라 팔아먹은 친일파 역적들 중에도 노론 계열 인물들이 많았다.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송병준 등 핵심 친일 역적들 중 상당수가 노론 가문이거나 노론의 정치적 기반과 닿아 있었다. 반면 남인 계열이나 소론계열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나왔다. 전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이회영 가문이나 이상룡 가문이 그런 예다.

경술 국치와 국론분열이 주는 교훈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 타협을 거부했던 교조적 명분론은 조선 말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유연하고 현실적으로 대처할 실용적 국정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멸망을 자초했다. 한국 현대 사회의 진영주의 역시 상대를 협력의 대상이 아닌 타도해야 할 적으로 여겨 타협이 불가능하다. 이런 극단적 진영주의는 사회적 합의 구조를 파괴하며, 복잡한 국제정세에 대처해야 하는 국가적 역량을 떨어뜨린다.
국가의 성장과 위기 극복은 내부의 건전한 비판과 토론에서 비롯되지만, 집단적 진영 논리에 빠져 공존을 거부할 때는 국가 전체의 기틀이 흔들리게 된다. 여당인 민주당 전당대회조차 한솥밥을 먹는 당원들끼리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전쟁이 되었다. 경술국치는 국론분열과 집단 이기주의가 초래하는 국가적 재앙을 증명한 역사적 사례로 국치일을 맞아 민주당이고 국민의 힘이고 깊은 깨달음이 있기 바란다.




기사 등록일: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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