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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이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142 _ <죽어 가는 시인의 변,, 칼럼>
 
영국이 낳은 낭만파 시인 로오드 바이런 (Load Byron-1788-1824)은 귀족 태생으로 태어 났으나 절름발이였다. 그는 케임브릿지 대학 시절 방탕한 생활을 했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그의 방탕 생활로 어머니와 불화 속에 지중해로 여행길에 오른다. 세계적 명문 대학 케임브릿지 대학을 중퇴한 그는 자기가 불구라는 육체적 비관 속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내 경우 내가 시인이란 변을 생각한다면 내가 이 세상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뇌와 슬픔 번뇌를 눈물로 승화시켜 한자 한자 생존의 현실을 달관하는 속에 응어리진 마음의 잉태가 좋은 시로 탄생되리라는 생각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그러나 나는 엉터리 시인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져 탁란이 되어 나 혼자 주절되고 있는 낭인임을 잘 알기에 이 글을 쓰고있다.

그런데 여기에 낭만파 시인으로 불후의 명작을 남긴 세계적인 시인이 있슴을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가 바로 로오드 바이런이라는 생각이다. 그의 일화 중 한마디는 어느 날 하룻밤을 자고 나니 세계적인 유명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 한 마디를 음미하며 나 자신 시를 좋아해서 몇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지금도 울적할 때는 시라는 것을 쓴다고 원고지와 씨름하는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원고지를 찢고 구겨서 휴지통에 넣으면 원고지가 나를 원망한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멋대로 끌적 끌적 하다가는 갈기갈기 찢어서 휴지통에 처 넣느냐고, 내 몸이 아프다고 항의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때마다 바이런을 생각한다. 내 육신도 바이런 같이 정상이 아니였다면 몸의 열등 의식에서 오는 비애가 세계적인 명작 시 한 편 쯤 건졌을 텐데 하는 막연한 상념을 씹으며 다시 원고지를 잡곤 한다. 나는 요즘 가끔 시라는 것을 쓰며 생각한다.

릴케도 읽어 보고 괴테도 읽어 보고 그 속 마음을, 소월의 나보기가 엮겨워 할것 같아 그의 시를 나의 마음에 접목시켰다가 나의 시가 불쌍해져 있슴을 알고 나는 몇번인가 울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시는 내가 좋아 하는 사람을 위해 감동도 주지 못했고 북쪽 동포들이 못 먹고 죽어가고 남쪽 동포들이 빈부의 격차, 국회라는 곳에서는 민생보다 정쟁과 이념 투쟁으로 싸움이 만연해도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했다.

텅 빈 방, 언제나 홀로 앉아 원고지를 주무르며 웃다가 울고, 허탈에 쌓인 가여운 나의 시, 내 시가 가엾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말했던가 시인은 그 사회가 좋든 싫든 사회를 위한 반항에서 시를 쓴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여년간 나는 나 나름대로 나에게 주어진 사회 현실이 못마땅한 자괴감 속에서 시라는 것을 쓰지만 그 영향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이고 바다에 돌 하나 던져 넣는 형상임을 알면서도 나는 못마땅한 사회 현실에 대한 반항적인 칼럼도 쓰고 시도 발표하곤 했었다.

물론 나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이 있음을 알면서도 나대로는 시인의 생리 즉 어긋장 부리고 투정부리고 제 잘난 멋에 사는 근성 속에서 나름대로 못되먹은 사회 현실에 기여코자 하는 발버둥이 었었건만, 나의 시가 나의 칼럼이 이 사회에 받아 들여지지 않고 나의 글이 행여 신문사에 불이익을 주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그나마 그 알량한 글, 이를 테면 나대로의 시인의 근성이 그대로 표출될 수 없는 글을 쓰는 슬픔을 안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의 글도 나의 시도 볼품이 없지만 글을 쓴다는 사람들 특히, 시인이란 사람들이 사회를 위하여 시인의 근성을 발휘치 못하는 사회, 그 사회는 죽었고 또한 시를 쓰는 시인도 죽었다고 외쳐본다. 이를테면 정의도,사랑도,평화도, 자유도, 시도, 진실된 대화도, 목마른 현실에서 나의 목은 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법과 원칙과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 사람이 사람 대접받고 살 수 있는 사회, 능력과 성실이 인정 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나의 생존의 철학이 었기에 세상 사람들이 나를 무어라 말하든 나에게 돌아오는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며 오늘도 시인이 죽은 이 사회를 한탄하며 이 글을 쓴다.



세익스피어가 말하기를 "말(대사)의 성패는 듣고 판단하는 기준에 달렸지, 말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혀 끝에 달려있지 않다"는 명언을 더듬으며 내 글에 올바른 판단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즉, 시인이 아닌 시인인 사람, 종교를 옳게 믿지 않으면서도 참 종교인이라 외치는 사람들, 올바른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면서도 교육자라 외치는 사람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서도 정치다운 정치를 못하는 사람들, 감투에 걸맞는 일을 못하면서도 감투를 좋아하는 사람들, 언론다운 신문을 발행치 못하면서 언론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 이런 현실들 앞에 시인이 시인다운 사회의 방향타를 잡고, 시인다운 참다운 항거와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자 함은 나의 절규만은 아니리라. 한마디로 내가 있는 현실은 시인이 보기에는 죽은 사회이다. 시인이 죽었으니 죽은 사회임을 알면서도 여기 죽음을 두려워하며 방황하는 한 탁란의 낭인 시인이 있다. 민초







기사 등록일: 20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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