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도 빈소도 생략" 국경 넘어 번지는 '조용한 장례식 문화' - 빈소 없이 조촐하게 ‘가족장’ 추세 , 비싼 가격·획일화된 절차 거부 현상
한국의 무빈소 장례와 캐나다의 인생 축하식 (그림 출처 : ChatGPT)
"비싼 장례식을 치러야만 효도일까."
(이정화 기자) 장례비 폭등에 신음하는 현대인들이 허례허식을 걷어내고 있다. 한국에서 '무빈소 장례'가 대안으로 떠오른 데 이어, 캘거리 한인 사회와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빈소와 조문 절차를 생략한 채 시신을 곧바로 화장하는 장례 방식(Direct Cremation) 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형식에 매이기보다 고인의 생전 뜻을 차분히 기리는 '조용한 이별'이 새로운 장례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 1만불 vs 1천불…전통 장례식 수요 감소세
캐나다 장례협회 통계에 따르면 현재 캐나다인 77%가 화장을 선택하고 있다. 간소화된 직접 화장 선호 현상이 높은 화장률을 유지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앨버타주 역시 마찬가지다. 방부 처리나 고가 용품 구매를 유도하던 장례 업계의 오랜 관행이 고물가 시대를 맞아 빠르게 힘을 잃고 있다 현재 캘거리에서 관을 구입하고 뷰잉(조문) 공간을 빌려 땅에 묻는 전통적인 매장 장례를 치르려면 약 1만달러(1천만원)에 달하는 액수가 소요된다.
슬픔 속에 장례를 치르는 유족들에게 이런 액수는 가끔 현실적 고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반면 빈소 마련과 조문객 맞이 뷰잉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화장만 진행하는 ‘직접 화장’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비용은 약 1300달러 선으로 낮아진다. 장례협회 측은 "거액을 들인 일회성 의식보다 고인의 평소 뜻을 기리는 소박하고 개인화된 이별 방식이 현대인들에게 훨씬 진정성 있는 추모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조용한 이별'을 택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빈소 장례는 지난해 전체 장례의 약 15%를 차지했고 수도권에서는 20% 수준까지 확대됐다.
변화의 핵심 요인은 비용 부담과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다. 전통적인 삼일장은 약 1500만원 안팎이 드는 반면, 무빈소 장례는 30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 여기에 팬데믹 이후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는 문화가 자리 잡고 1인 가구가 800만을 돌파하면서 빈소를 차릴 여건이 부족해졌다. 때문에 사망자는 늘고 있지만 장례식장과 상조회사는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 "조문 대신 추억" 달라지는 한·캐 장례 문화
캘거리에서는 합리적인 장례 비용에 대한 비판과 간소화 흐름에 대한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한 주민은 “최근 1300달러에 직접 화장을 마치고 고인이 좋아하던 공원에서 소박하게 ‘인생 축하식(Celebration of Life)’을 열었다”며 “고가 패키지와 숨은 수수료를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형식적인 조문객을 맞이하는 것보다 훨씬 뜻깊었다”는 경험담을 공유했다.
한국의 온라인 반응도 비슷하다. “어머니 장례에 천만원 넘게 들었다”, “장인어른 2일장에 이해할 수 없는 전기세 부과나 과도한 부대비용 요구 등 불투명한 관행이 어이없다”며 쓸데없는 허례허식을 줄인 무빈소 장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이처럼 빈소와 조문이 사라진 자리는 새로운 추모 문화가 채우고 있다. 화장 후 유골함을 모시고 야외 공원이나 레스토랑, 자택에 모여 고인을 추억하는 ‘인생 축하식’이 대표적이다. 동포 사회에서도 복잡한 전통 장례 대신 직접 화장 후 소규모 추모식을 치르거나 유골을 고국으로 모시는 가정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편 예기치 못한 사별 속 거액의 지출을 피하려면 유족의 철저한 사전 대비가 필수다.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는 업체의 권유에 원치 않는 추가 옵션을 선택하기 쉽기 때문이다. 계약 전 여러 업체의 '기본 가격 명세서'를 받아 비교하고, 의무 사항이 아닌 시신 방부 처리나 고가 용품은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미리 가족들과 간소화 범위를 정해 두고 예산에 맞춰 계약 항목을 점검하는 것이 필수다.
화려한 빈소와 번잡한 절차는 줄었지만 고인을 기리는 마음마저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장례의 무게중심이 국경을 넘어 '남에게 보이는 형식'에서 '가족 간의 진정한 추모'로 옮겨가며 새로운 이별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