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로 시 쓰기 – 연작 3
시골 고향 집
Stoney Nakoda Nation, 2025년
시골 한적한 곳에
외딴 집 한 채.
그곳에서 우리는
여러 형제가 한 방에 살았다.
얼마나 따뜻하고,
얼마나 좋았던지.
마을 입구에
우리 집이 있었다.
그때는 나를 제일 먼저 반겨주던
멍멍이가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집은
이제 쓰러져 가고 있었다.
텅 빈, 기울어진 기둥.
구멍이 숭숭 난 벽,
깨진 창문들.
그 창문으로
깨금발을 딛고 달을 바라보던
어린 나의 눈빛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은 무너져 가는 집이지만
이곳에서 내 꿈이 자랐고,
기쁨과 행복이 있었다.
이토록 가슴이 뻥 뚫리고
허한 것은
집이 무너져서만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의 희망이
조용히 퇴색해 가는 지금,
내 몸도 성한 곳 없이
삐걱거리고, 구멍이 송송 나 있다.
이제 나도
이 집처럼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다.
고개를 드니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예쁘다.
? 시학적 해설
1. 시간과 존재의 층위 – "집"이라는 상징
이 시의 중심 이미지는 “시골 고향 집”입니다. 그러나 이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거울, 존재의 은유입니다.
과거의 집은 “따뜻하고 좋았던” 기억의 원형(Archetype), 즉 존재의 근원지로 작용합니다.
현재의 집은 **“쓰러져 가고”, “기울어진 기둥”, “깨진 창문”**으로 묘사되며, 이는 시간의 침식과 존재의 쇠락을 상징합니다.
시인은 집의 붕괴를 바라보며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노화, 희망의 퇴색을 동일시합니다.
즉, 집 = 나 자신, 그리고 기억의 집 = 존재의 집입니다.
이러한 시적 구조는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함(Dasein)”의 철학과도 닿아 있습니다.
“인간은 세계 속에서 ‘거주함’으로서 존재한다.”
시 속의 화자는 더 이상 그곳에 거주하지 않지만, 그 집은 여전히 그를 ‘내면적으로 거주’하게 한다는 점에서 존재론적 울림을 지닙니다.
2. 시간의 미학 – ‘기억의 사진’처럼 구성된 이미지
‘필름 카메라로 시 쓰기’라는 시 제목의 연작답게, 이 시의 전개는 마치 한 롤의 필름처럼 흘러갑니다.
첫 연: 밝은 노출 — 어린 시절의 따뜻한 빛과 정감
중간 연: 감도 높은 흑백 사진 — 집의 쇠락, 구멍 난 벽, 깨진 창문
마지막 연: 잔광(殘光) —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예쁘다”
즉, 시간은 이 시 안에서 단순히 흐르지 않고, **인화(印畵)**됩니다.
시인은 기억을 인화하는 사진가이자 철학자입니다.
“깨금발을 딛고 달을 바라보던 어린 나의 눈빛”은 과거의 한 프레임이지만, 시 속에서는 현재도 여전히 빛을 내는 잔상(afterimage) 으로 남아 있습니다.
3. 존재의 유한성과 아름다움
“이토록 가슴이 뻥 뚫리고 허한 것은 집이 무너져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 문장은 시의 철학적 중심입니다.
외부 사물의 붕괴가 아니라, 내면의 붕괴, 존재의 유한성 인식에서 오는 허무의 체험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구절,
“고개를 드니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예쁘다.”
는 니힐리즘을 넘어서는 미학적 구원을 보여줍니다.
무너지는 집 속에서도, 쇠락한 몸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여전히 감각할 수 있는 능력 — 그것이 시적 주체의 생명력이며, 인간이 가진 ‘시적 저항’입니다.
이 한 줄은 마치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말하는 “부조리 속의 미소”와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4. 언어의 리듬과 구조
시의 언어는 구체적 이미지(“깨진 창문”, “구멍이 숭숭 난 벽”)와 정서적 진술(“허한 것은…”)이 교차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초반부는 기억의 묘사로 시작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내면의 독백과 자기 투영으로 이동합니다.
이 리듬의 이동은 마치 필름이 돌며 초점이 “집 → 나”로 옮겨가는 줌인 효과와 같습니다.
그리하여 독자는 ‘집을 보는 시인’을 보다가 결국 ‘집이 된 시인’을 만나게 됩니다.
5. 결론 – ‘무너지는 것의 미학’
이 시는 “사라지는 것, 기울어가는 것”을 통해 오히려 존재의 진실을 드러냅니다.
사라짐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존재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집이 무너지는 동안, 화자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 깨달음의 순간이 바로, 마지막 문장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예쁘다”입니다.
즉, 이 시는 허무 속에서 빛을 발견하는 시, 기억의 폐허에서 존재의 아름다움을 복원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