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묵념하고 ¬ 김숙경 (시인/수필가, 에드먼튼)
현충일의 묵념 오전 10시.
현충일 사이렌이 울려 퍼지자 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느 곳에서는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우연한 만남이 더욱 깊은 울림을 남겼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는데, 내 옆으로 한 어르신이 앉으셨다. 해병대 모자를 쓰고 흰 제복에 여러 훈장을 단 모습이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행사에 가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올해 아흔두 살이라는 말씀에 놀랐는데, 정정한 모습에서는 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르신께서 물으셨다.
"6·25를 기억하십니까?"
나는 어린 시절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기억을 말씀 드렸다. 그러자 어르신은 열일곱 살 때 부산에서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고 하셨다. 서울 수복 작전에 참여하면서 수많은 전우들이 눈앞에서 쓰러졌고, 이름도 얼굴도 낯선 나라의 젊은이들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국 땅에 와 목숨을 바쳤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분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말씀하시던 어르신은 잠시 눈을 감으셨다. 마치 70여 년 전 그날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신 듯했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저절로 머리를 숙였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다시 깨달았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대한민국은 가난했다. 전쟁고아들이 거리를 떠돌았고, 헐벗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견뎌낸 세대는 좌절하지 않았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녀들을 공부시켰고, 새마을운동의 깃발 아래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며 땀 흘렸다. 도로를 놓고 공장을 세우며 산업화를 이끌었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고 손톱 밑에 피멍이 들어도 묵묵히 일했다. 자식들에게만큼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세대였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시작해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나라는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경외심을 느낀다.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킨 세대와 맨손으로 나라를 일으켜 세운 세대.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현충일 사이렌이 울리던 순간, 나는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 그리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모든 어르신들께 깊은 존경을 드린다.
부디 우리의 젊은 세대가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선배 세대가 지켜낸 나라를 더욱 성숙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기를 바란다.
오늘의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이 남긴 선물임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현충일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