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공화당 이기면 성인 1인당 5000달러”…중간선거 앞 ‘통 큰 배당’
미 성인 2억7000만명에 지급 땐 1조3500억달러…재원·지급 방식 불투명, ‘매표 공약’ 논란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중간선거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시간 45분 동안 황금시간대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Reuters)
(안영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면 미국 성인 모두에게 1인당 5000달러의 현금 배당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인 재원과 지급 방식은 밝히지 않아 실현 가능성과 적법성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의 첫 중간선거 전당대회에서 약 1시간45분 동안 연설하며 “공화당이 하원과 상원을 모두 이긴다면 모든 미국 성인에게 5000달러의 배당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이 주주들에게 현금을 배당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라며 이를 ‘트럼프 배당금(Trump dividend)’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다만 지급 대상과 재원, 구체적인 지급 절차 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미국 성인이 약 2억700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총 1조3500억달러가 필요한 대규모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배당금은 미국 내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도 제시했다. 그는 “공화당이 이기면 여러분도 함께 이기는 것이고 5000달러를 받게 된다”며 중간선거를 앞둔 유권자들에게 공화당 지지를 호소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은 연방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지만, 오는 11월 3일 중간선거에서는 민주당이 하원뿐 아니라 상원에서도 다수당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생활비 상승과 이란 전쟁 등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지지율이 압박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자신이 대통령 취임 이후 2년간 “대통령 역사상 가장 위대한 2년을 완성했다”고 자평하며 이번 선거를 사실상 자신의 재신임 선거로 규정했다. 그는 공화당 후보들에게 투표해 달라며 “내가 투표용지에 있다고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이번 공화당 전당대회는 당의 선거 전략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얼마나 강하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로 평가된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 조 그루터스는 행사에 ‘트럼프팔루자(Trumpapalooza)’라는 별칭을 붙일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 중심의 행사로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일까지 남은 8주 동안 경합 지역과 주요 선거구를 여러 차례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높은 인지도와 핵심 지지층 결집력이 중도·부동층 유권자들에게도 통할지는 불확실하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둬야 하는 후보들과 그의 핵심 지지층을 붙잡아야 하는 후보들 사이에서 고민이 커지고 있다. 미시간주의 톰 배럿 하원의원, 알래스카주의 댄 설리번 상원의원, 메인주의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 등 민주당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이번 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반면 경쟁이 치열한 하·상원 선거에 출마한 최소 16명의 공화당 후보들은 대회 연사로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5000달러 배당금 외에도 감세를 강조하며 물가 상승으로 부담이 커진 유권자들의 표심을 겨냥했다. 그는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자신의 감세 정책을 폐지하지 못하도록 ‘트럼프 감세’를 영구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인에 대한 현금성 지원 공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 태어난 미국 아동에게 1000달러를 일회성으로 지원하는 과세이연 저축투자계좌, 이른바 ‘트럼프 계좌’를 출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군 장병들에게 미국 독립 연도인 1776년을 상징하는 1776달러 특별 배당금을 지급했다.
다만 이번 5000달러 배당금은 규모가 차원이 다르다. 실제 시행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의회의 승인과 관련 법률 검토도 거쳐야 할 가능성이 있어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이 불가피하다. 야당에서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현금을 내걸어 유권자의 표를 얻으려는 사실상의 ‘매표 공약’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란 전쟁과 관련한 강경 발언도 쏟아냈다. 그는 지난해 이란의 지하 핵시설을 폭격했던 것과 관련해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며 이란의 지하 핵시설로 의심되는 이른바 ‘곡괭이산(Pickaxe Mountain)’에 대한 추가 공격 가능성을 거듭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이날 해당 지역에서 올해 들어 건설 활동이 크게 증가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직후 나왔다. 그는 “그곳에서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란이 핵시설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면 강력하게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미국이 우주군을 통해 이란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다며 “그들이 입은 옷의 태그까지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는 기존 주장도 반복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트럼프 해협’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농담 섞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캐나다와의 관세 갈등에 대해서는 다소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이 잘 풀릴 수도 있다”며 “캐나다는 정말 합의를 원하고 있고 합의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어 온타리오호를 가리켜 “그 호수는 ‘아메리카 호수’로 불리게 될 것”이라고 말해 캐나다를 둘러싼 기존의 압박성 발언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이 미국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자신들이 “필사적으로 협상하고 싶어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날 연설은 5000달러 현금 배당과 감세를 앞세운 경제 공약부터 이란과 캐나다를 겨냥한 강경 발언까지 자신의 핵심 지지층을 결집해 중간선거 승리를 이끌겠다는 선거 전략을 집약적으로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