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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근의 기자수첩) 경제 패권과 기축통화 - 쿠빌라이의 중상주의 정책
 
역사상 많은 제국이 있었다. 아시리아 제국, 페르시아 제국, 로마제국,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제국 등등. 그러나 이들 제국은 몽골제국에 비하면 골목대장 수준이었다. 몽골제국은 동북쪽 고려부터 시작해 차이나, 유라시아 대륙, 오늘날의 이란 아라비아 반도 소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아우르는 진정한 제국으로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이다.
칭기즈칸에서 시작된 몽골제국은 쿠빌라이 칸에 이르러 문물을 정비하고 진정한 제국이 되었다. 쿠빌라이 칸은 원 세조로 알려져 있다. 쿠빌라이는 내부 권력투쟁을 거쳐 대칸(황제)이 되었는데 한창 권력투쟁 할 때 고려에서 태자를 보내 화친을 청했다. 고려 태자는 그 후 왕이 되어 시호를 원종이라 하는데 고려 태자가 오자 쿠빌라이는 뛸 듯 기뻐했다는 기록이 있다. “수문제도 당 태종도 이기지 못한 나라인데 그 고려 태자가 화친을 청하러 왔다고?”
권력을 잡은 쿠빌라이는 고려의 풍속과 문화 전통을 건드리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다. 그것을 ‘세조구제’ 라고 하는데 원나라가 고려에 대해 심하게 참견하고 가혹한 요구를 할 때마다 고려 조정에서는 황제께서 유언 남기시기를 하며 ‘세조구제’를 내세워 모면했다.
몽골제국이 정복한 차이나, 유럽, 페르시아는 많은 인구를 거느린 농경정착문명인 반면 몽골은 유목이동문명 이었다. 유목문명은 늘 물자가 부족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하거나 무역을 해야 했다. 몽골은 정복지를 분할해 칸국(汗國)을 세웠고 칸국들 사이에 일체감 동질감을 조성해 문화, 경제, 정치 교류가 왕성했다.
쿠빌라이는 거대한 제국에 일종의 자유무역지대를 구상했다. 다인종 다문화 다언어를 배경으로 정치, 경제, 유통, 생산이 이뤄지는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다. 쿠빌라이는 기존의 유목민 군사력에 차이나 대륙의 경제력, 중앙아시아 페르시아의 무슬림의 상업력을 합한 대교역권을 만들었다.
쿠빌라이의 기축통화
역참제로 교통이 편리해지고 왕래가 잦아 “제국의 끝에서부터 끝까지 여자 혼자 금 항아리이고 걸어 가도 안전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관세를 일원화해 항구나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내던 관세를 최종 매각지에서 한번만 내게 했다. 세율은 3.5%로 높은 편이 아니었다.
쿠빌라이는 은과 비단에 기반들 둔 교초라는 화폐를 발행하고 금과 은의 유통을 금지시켰다. 몽골제국 영향력 아래 있는 나라들은 모두 교초를 사용했다. 요즘 말로 한다면 기축통화가 된 셈이다. 교초를 처음 발행할 때는 교초 한 장에 동전 1,000개였으나 군사비, 정복지 관리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 교초가 부족해졌다. 돈 찍어내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으니 돈을 마구 찍어내 통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폭락하기 시작한 교초는 폐지되기 직전인 1356년에는 교초 한 장에 동전 0.28로 약 4,000배 폭락했다.
몽골제국이 100년도 못 가 멸망하게 된 원인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경제붕괴로 사방에서 민란이 일어나 멸망을 재촉했다.
기축통화의 운명
몽골제국 이전에도 로마, 아테네가 정치 경제 패권을 장악해 그 세력권 내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만들어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로마도 아테네도 대규모 재정지출이 필요하면 돈을 마구 찍어냈다. 아테네는 드라크마라는 은화를 사용했는데 1드라크마가 은 4.3그램이었다. 그런데 재정지출이 늘어나자 은화에 구리를 섞어 사용했다. 재정적자 타개책이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몰랐으나 구리 함유량이 점점 늘어나자 순도 높은 은화는 집에 놔두고 구리 섞은 은화가 유통되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이다.
이렇게 통화시장이 신뢰를 잃자 경제가 마비되었다. 스파르타와 전쟁 중인 아테네는 전쟁에 지고 신흥강국 스파르타에 패권을 빼앗겼다.
로마의 기축통화는 데나리우스(성경에는 데나리온) 은화였는데 방만한 지출에 로마 대화재로 재정적자가 발생하자 은화에 구리를 섞어 사용했다. 아테네와 똑 같은 패턴이다. 구리 함유량이 점점 늘어나자 은화는 불신당하고 이는 시장 기능 상실로 이어져 물물교환 시대로 다시 돌아갔다.
현대적 의미의 기축통화의 시작은 스페인이다. 남미에 거대한 식민지를 갖고 있던 스페인은 한때 전 세계 금은 생산량의 83%를 차지하는 부국이었다. 아프리카 항로, 인도 항로, 아메리카 항로를 쥐고 있던 스페인은 오늘의 미국에 해당하는 패권 국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스페인 화폐가 기축통화로 무역에 사용되었다. 아메리카 대륙, 유럽은 물론 동남아도 스페인 주화를 무역거래에 사용했다. 미국도 건국 초기에는 스페인 화폐를 법정화폐로 사용했다.
그런데 식민지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져 들어와도 스페인의 팽창정책, 방만한 재정을 견디지 못했다. 영국과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하자 기축통화는 파운드 화로 넘어가고 세계 패권도 영국으로 넘어갔다.
영국 파운드 화는 100년 넘게 국제 무역의 거래 기준통화로 쓰였다. 전 세계 무역량의 60%가 파운드화로 결제되었다. 그러나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르며 엄청난 전비를 쏟아 부은 영국은 전후 복구사업의 재정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기축 통화는 2차대전 후 미국 달러로 넘어 갔다.
기축 통화의 운명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방만한 재정적자, 혹은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쟁비용이나 전쟁 복구비용 모두 재정을 압박하니까 기축통화는 재정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기축통화 달러
양차 대전을 통해 피해를 보기는 커녕 두번의 세계대전으로 특수를 단단히 누린 미 달러는 2차대전 후 파운드 화를 밀어내고 기축통화가 되었다. 파운드나 달러는 금본위제를 채택해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에 해당되는 만큼 화폐를 찍어내 국제사회의 신뢰를 유지했다. 미국은 금 1 아운스(ounce)를 35달러에 맞춰 화폐를 발행했다. 파운드나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달라고 하면 교환해 주었다.
미국은 2차대전 후 유럽 전후 복구사업에 130억 달러를 지원했다. 냉전시대 소련에 맞서 엄청난 군사비를 지출했다. 월남전에도 1,300억 달러를 퍼부었다. 당연히 금 보유 보다 많은 달러를 찍어내 금 보유액의 8배가 되는 달러가 전세계에 풀렸다. 이쯤 되면 시장의 신뢰를 잃고 스페인처럼 국가부도가 나야 마땅한데 미국은 금 본위제를 포기하고 원유를 기반으로 했다.
사우디의 안보를 책임지는 대신 원유 대금은 달러만 결제하기로 약속했다. 이것을 페트로 달러라고 부른다. 미 달러는 국제 원유대금 결제 수단으로 다시 살아나 오늘날에 이르렀다.
기축통화 위안화
8년 전 위안화는 기축통화가 되었다. 외환시장, 무역결제에 위안화 결제가 가능해졌다. 그때 일부 경제학자들은 2020년이 되면 달러를 밀어내고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된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달러 패권은 아직도 견고하다. 달러의 힘이 과거보다 약해진 것은 사실이나 위안화가 달러를 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1999년 기준 세계 각국 중앙은행 외환 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71%였는데 2021년 59%로 내려갔다. 그러면 그 공백을 위안화가 채웠을까? 아니다. 유로가 20.5%, 엔화가 5.5%, 파운드가 4.7% 위안화 2.15%다.
통화 별 국제 금융거래에서도 달러가 38.3%, 유로화 36.6%, 파운드화 6.8%, 엔화 3.5% 위안화 2.4% 수준으로 달러에 도전하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축통화 역할을 하려면 대규모 무역적자를 감당할 경제적 정치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미국이 만성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이유가 경제적으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기축통화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달러가 기축통화 자격을 유지하려면 세계 각국이 달러를 많이 보유해야 하니까 무역거래를 통해 해당국가에 달러로 지불을 해 달러 유통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적자를 감수한다.
일본도 수출이 주종을 이루는 나라로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에서 많은 이익을 볼 텐데 엔화는 안전자산이란 인식이 있어 각국이 엔화를 보유하다 보니 가치가 떨어지지 않아 일본 경제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올리고 달러 가치를 떨어뜨린 점도 작용하고 있지만.
일인당 국민소득 13,000달러에 제조업이 주종을 이루는 차이나가 막대한 무역적자를 견딜 수 있는 경제력을 갖고 있을까? 그리고 전 세계 국가들이 경제와 환율, 금융정책을 시장기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통제하는 위안화를 안전자산으로 신뢰할까? 자본유통, 외환 유통이 정부 통제 없이 자유로운가?
작년 12월 습근평(習近平) 주석이 사우디를 방문해 페트로 위안화 시대가 열리고 페트로 달러 붕괴가 시작되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습근평 주석은 사우디 실세 왕자 빈 살만에게 원유대금을 위안화로 지불하는 게 어떠냐 고 운을 떼었으나 “글쎄올시다.”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달러 패권도 언젠가 무너지겠지만 위안화가 달러를 대신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기사 등록일: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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