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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 시와 감각적 시 분석 3 감상평/이명희(목향)
목향 이명희
신경림 작가 
나희덕 작가 
낙타/신경림(사실적)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나희덕(감각적)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서론-신경림 시인은 1935년생이고, 나희덕 시인은 1966년생이다. 세대차가 큰 만큼 시의 화법이 다른 두 편의 시를 사실적 시와 감각적 시로 분류해 보았다. 동물이 소재지만 시의 분위기나 시인들의 가치관은 확연히 다르다.

감상평-[낙타] 신경림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쟁을 치른 시인이다. 그때도 환경의 최혜를 누리는 계층이 있었지만, 가난한 시인은 붓을 꺾을지, 말지 고민해야만 했다. 낙타처럼 별과 달과 해와 모래 밖에 본 것이 없다며 겸손히 세속을 초월해 쓴 시다.
이 시는 상실했던 존재를 찾으려는 고백서 같다. ‘낙타’를 타고 저승길을 갈 때도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어도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사물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을 낙타가 순응하듯 시인도 시대의 환경에 순응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안 해 본 일이 없던 시인이 청년에서 노인이 되기까지. 시인이 겪었던 격동의 세월을 낙타의 삶에 병치하고 가여운 자신을 낙타로 비유하며 길동무로 투영했다. 시인은 말하길 ‘시 작업이야말로 세계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빨리 변하고 쾌속으로 질주하는 속에서 시는 어쩔 수 없이 느린 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는 언젠가는 버려질 방언 같은 것일는지도 모른다.’ 이는 시대가 바뀌어도 독자들이 시를 감상할 때 ‘온고지신’으로 해석해 주었으면 하는 시인의 바람일 수 있다. 노시인의 ‘낙타’를 읽으며 침잠의 세계에 머물러 보았다.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시에서 ‘말’은 동물과 언어의 이중적 의미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이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나희덕 시인은 동물인 말을 통해 인간의 말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말이 언어로 출간되는 것은 무한대다.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우리가 읽는 책은 한 마리 말일 수 있으나, 어떤 말은 물거품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 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시적 언어를 형상화로 멋지게 표현했다. 말의 눈동자에 초점을 맞추는 작업은 언어의 잔치다.
그러나, 언어나 시나 말은 미완의 상태에 머물기도 한다. 젊은 시인의 시적 구상은 초로의 시인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초고속으로 질주한다. 여자의 뇌는 멀티 하다. 언어를 다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세월이 흘러 시인들의 시어가 방언으로 사라질망정, 나희덕은 후학에게 젊은 언어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시인의 화법은 독자들의 시집 선택에 시너지 효과가 있다.

결론-사실적이면서 감각적이고 주제까지 감동적인 시를 읽는다면 금상첨화다. 좋은 시를 대할 때면 정신이 집중된다. 시를 읽는 시간은 짧아도 정화되는 시간은 길다. 두 시를 대비하면, 아날로그와 디지털, 지족과 만족, 체념과 관조, 현실과 낭만이다. 두 시를 읽고 숙지한 것은 세대와 성별, 환경의 확장과 수축이 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기사 등록일: 2024-03-06
Juksan | 2024-03-06 16:57 |
0     0    

자진 삭제되었습니다.

Juksan | 2024-03-21 22:16 |
0     0    

감각적 시와 사실적 시를 잘 비교 분석하셨네요. 평론가로서 손색이 없어보입니다.
<시를 읽는 시간은 짧아도 정화되는 시간은 길다. 두 시를 대비하면, 아날로그와 디지털, 지족과 만족, 체념과 관조, 현실과 낭만이다.> 총평 결론의 말이 멋져요.^^

글자가 빠진곳이 있는데 수정하려니 수정이 안되어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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