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염 / 정 문
색수상행식이 공한 것이요 일체 우주는 마음이 그려낸 번뇌의 장이고
당신과 내가 안타까운 삶이었다면 윤회의 길을 또 돌아
후생에는 부족함 없이 만나 같이 살려니, 라며
꺼먹꺼먹 졸음에 젖은 얼굴에 속닥여 아내의 뇌를 마비시키다가
요런 능력뿐이 없는
내 모양이 슬퍼져 돌아누웠는데
미워졌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아요,
색수상행식이 공한 것이요 일체 우주는 마음이 그려낸 번뇌의 장이고
당신과 내가 안타까운 삶이었다면 윤회의 길을 또 돌아
후생에는 부족함 없이 만나 같이 살려니, 하며 아내가
등에 붙어 김장독 같은 손 내밀어
도란도란
꿈결처럼
나의 뇌가 마비되어 가는데
아니,
마비되지 않는 반질반질한 나의 뇌이기에
또랑또랑한 눈을 가진
아내도 그렇다고 보여지기에
나란히
이불 위로 목을 길게 뺀
우리 부부는 합창하였다
색수상행식이 공한 것이요 일체 우주는 마음이 그려낸 번뇌의 장이고
당신과 내가 안타까운 삶이었다면 윤회의 길을 또 돌아
후생에는 부족함 없이 만나 같이 살려니,
< 감상 & 생각>
일단, 단숨에 읽히는 시 (지루하지 않다는 의미)
- 요즘은 재미없는 시들도 너무 많은 것이어서 (내 졸시 포함하여)
기염만장氣焰萬丈이란 말도 있듯이,
불이 타 오르듯 기세가 왕성하게 혹은 호연하게 말한다 할까
반면에, 살짝 한 꺼풀 벗겨내면...
그 마음이 정靜하지 못하다란 비유比喩의 고전적古典的인 의미도 있지만
(고요하게 가라앉지 못한 마음이란 뜻에서)
하지만 여기선, 그냥 前者(氣焰萬丈)의 뜻으로 보고
시를 감상함이 타당할듯 (개인적 생각)
일체의 꾸밈없이 삶을 있는 그대로의 삶 그대로 시에 담되,
윤회輪廻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체중생고一切衆生苦의
그 어떤 안타까움도 읽히고
(여기서, 윤회 같은 걸 일체 인정하지 않는 일부 [천주. 개신교 --- 죽으면, 오로지
달랑하니 천국 아니면 지옥밖에 없다는] 독자층에겐 그 시적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담도 있지만
어차피 그 정도는 감수甘受하고)
시의 은근한 背景으로,
얼핏 佛家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반야심경般若心經' 等이 떠올려지는데...
그렇다 해서, 그런 것들에게 시인이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그런 걸 뛰어넘어 無限의 우주성과 有限의 인간성이 자아내는
영원한 평행선에 마지막 종점終點을 찍는 포에지 Poesie;詩精神, 혹은 열락悅樂을
그리며 힘차게 포효咆哮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에 이 시의 매력이 있다 할까.
" 우리 부부는 합창하였다 "
어쨌던, 세상의 모든 시가 늘 추구하고 있는 형이상적形而上的 시의 理想은
시에서 말해지는 것처럼 生에 있어 인간적 존재의 <열렬한 구원救援의 합창>에
그 시원始原이 있는 것 아닐까..
- 희선,
Dream











특히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윤회는 죽음 후의 문제가 아니라, 현세의 삶에 대한 문제입니다.
윤회는 현재, 지금 여기, 순간순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새로운 깨달음과 인식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율의 말처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살아서 착한 일을 해야, 죽은 후 훌륭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지금 여기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살라는 격려와 조언으로 듣는 정도가 충분합니다. 죽음과 죽음 후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윤회론은 크게 잘못된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죽음 후에 대해 크게 걱정할 것이 못됩니다. 단지 오늘 하루 나의 삶을 100% 내가 책임지고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만족하게 사는 것이 소중합니다.
유대교에서 파생된 기독교외 회교도는 일종의 윤회론(구원론)에 사로잡혀 이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로 갈 준바를 하느라 거짓과 은폐와 폭력과 탄압과 착취 속에서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은 후에 무엇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아이들의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동화 이야기 정도로 충분합니다. 가정과 사회가 윤회론에 사로잡히면 중동의 테러분자들과 기독교의 제국주의, 인종차별, 빈부차별, 성차별 등등의 만행들이 세상을 암흑과 절망의 늪으로 빠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