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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흉한 음모를 가지고 아내와 민들레에 대한 얘기를 했다. 왜냐하면 민들레에 대한 꽤 재밌는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눈 이야기를 끄적거리면 아내가 읽으면서 무척 즐거워한다. 글과 함께 올릴려고 산책중에 아내의 코치를 받으며 민들레 사진을 찍기도 했다.
더불어서 인공지능에 대한 얘기도 좀 했다. 몇달 전에 읽은 A brief history of intelligence by Bennett, Max S. 에 의하면 지능의 출현은 생물의 똥구멍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입과 배설구가 분리된 생명체의 방향성이 움직임의 의도, 즉 스티어링을 유발했고 이게 최초의 지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불현듯 인공지능에게 민들레에 대한 수필을 쓰게 했다. 나의 지시에 따라 민들레에 대한 좋은 추억, 민들레라는 일종의 환경 파괴, 잡초 때문에 고통받는 심경 등등 다양한 시각에서 여러 방면의 에세이가 나왔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조성을 개박살 내고 있는 현실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한국에서 나의 민들레에 대한 추억은 좋은것 일색이다. 민들레 홀씨는 장난감이였고 오솔길에 핀 노란 민들레꽃은 봄의 전령이었다. 아내도 역시 좋은 기억을 얘기해 줬다. 오죽하면 민들레 홀씨되어 어쩌고 하는 유행가와 민들레 영토라는 카페 프랜차이즈가 한때 한국에서 성행했겠는가.
캐나다에서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건 민들레와의 전쟁을 뜻하기도 한다. 집에서 놀고 있는 요즘, 잔디 관리는 나의 소관이 되었다. 잔디밭에 노란 민들레 꽃이 올라올 때마다 귀찮아하면서 뽑아버리는 중이다. 민들레 그 자체는 변함이 없는데 한국이나 캐나다라는 지리적인 여건에 따라 이미지가 이렇게나 변한다.
그래서 잔디밭에 한송이 피어난 민들레로부터 불교의 무아사상까지 이르는 수필을 구상했다. 그런데 집어쳤다. 계속 인공지능이 쓴 글 내용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표절하려는 욕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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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능력에 대해, 창조적인 면을 떠나서 실제 업무 분야에서의 평가는 아직 박하다. 일전에 인공지능에 대해 어떤 기업의 고위직이 평가한 글을 읽었다. 한마디로 똑똑한척하는 대리 정도의 능력뿐이라는거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됐다.
한국에서 대기업 연구소에 근무할 때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녔다. 한국에 들여와 사업할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직접 업체를 방문하거나 전시회 등을 참관했다.
어떤 업체의 제품을 평가할 때, 사실 나의 평가는 전혀 쓸모없다. 상대 업체의 경영진과 나의 사수인 임원이 이미 결정을 해 놓으면, 현업인 나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사업은 어쨌든 굴러간다. 1차 평가에서 부정적인 내용을 언급한 나의 보고서는 임원의 의도대로 수정되어야 한다. 나는 있는 머리, 없는 머리를 짜내서 매력적인 상품으로 포장해야 하는 일을 한다. 임원 회의에서 통과되어야 할 자료를 만드는 것이다. 좀 자괴감이 들지만, 뭐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인공지능도 당시 현업인 나와 같다. 어떤 건에 대해 첫 보고서를 만들고, 내가 마음에 안드는 부분을 계속 어떤 방향으로 수정을 요구하면, 결국 내 마음에 드는 문서가 만들어진다. 물론 맨 처음 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완전히 내 의도대로 움직이는 현업의 대리 수준이다.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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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공지능은 인간과 다르게 자기 학습 능력이 없다. 물론 인공지능은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일단 릴리즈 된 이후엔 학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hallucination 때문이다.
현재 LLM 모델은 절대 모른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말을 만들어 내 결국 거짓말까지 한다. 이를 hallucination 이라고 하는데, 나도 경험해 봤다. 올해 초 용인을 방문했을 때 인공지능에게 관광 코스를 짜게 했더니, 있지도 않은 박물관을 추천하는 것이었다. 박물관의 주소를 알려 달랬더니 주택가의 한 가정집 주소를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게 맞냐고 질문했더니 그때서야 자기가 잘못했다고 인정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혹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공지능의 학습은 인간이 많이 개입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딥시크는 일당 독재나 시진핑에 대한 내용에 많은 검열이 들어가 있다. 때문에 현재의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실시간 학습을 할 수 없다. 검열자가 관리 감독에 소홀한 순간 시진핑을 비판하는 딥시크로 발전해 개발진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르게 생각하면 특정 주제에 대한 인공지능의 결과물이 통제되고 조작될 수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인공지능을 100% 신뢰하는 것은 아직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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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한 책에 의하면 지능은 생명체 안에서 5단계의 발전을 거쳤다. 앞서 말했다시피 제1단계는 똥구멍이다. 그리고 현재 6단계의 발전을 막 시작하려는 단계인데, 인간의 두뇌라는 제한된 감옥에서 탈출하여 실리콘 기판 위에서 뭔가를 모색하는 단계라고 한다. 즉 인공지능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아직은 인간에 비해 한계가 있지만 조만간 그 한계를 뛰어넘을 것은 자명하다. 현재는 똑똑한척하는 대리에 불과하지만, 갑자기 모세와 같은 지혜와 권능을 가지고 인간을 지배하려 들면 약간 무서울지도…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구경하기 위해서 좀 더 오래 살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