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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일기 7) 끝없는, 그러나 즐거운 영어 공부

작성자 떠돌이 게시물번호 19381 작성일 2025-11-10 22:46 조회수 40

 

아마존의 킨들 화이트 페이퍼 기기로 영어책을 읽고 있다. 하지만 영어 원어민이 아닌 이상 100% 자유롭게 독서를 즐길 수는 없다. 다행히도 킨들 기기에는 영영사전이 포함되어 있다. 모르는 단어를 꾹 누르면 사전 화면이 팝업되어 대충 뜻을 훑어볼 수 있다.

 

게다가 기기에는 vocabulary builder 라는 기능이 있다. 한번 찾아본 단어를 향후에 쭉 리뷰할 수 있는 기능이다. 이를 이용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아침 식사 이후에 첫 1시간 정도 vocabulary builder 를 이용해 영어 공부를 한다. 따라서 나의 독서는 새로운 영어 표현을 낚는 어부와 같다. 쉬운 책을 읽을 땐 vocabulary builder 의 단어 수가 줄어들고, 어려운 책을 읽을 땐 공부해야 할 vocabulary builder의 단어장이 끝없이 늘어난다.

 

새로 공부해야 할 영어 표현은 크게 세 가지 부류다.

 

첫째, 단어 공부다.

 

뇌과학이나 물리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 생전 처음 보는 영어 전문 용어들이 난무한다. 비록 금방 잊어버릴 테지만, 그런 단어들을 쭉 리뷰한다. 하지만 일반 소설에서도 듣도보도 못한 단어가 등장한다. 얼마 전에 읽은 Octavia E. Butler 의 Dawn 이라는 요상한 소설에서 nudibranch 라는 단어를 접했다. 주인공이 만난 외계인의 외형을 묘사한 단어였는데, 그 외계인이 마치 등신대의 nudibranch 처럼 생겼다고 한다. 이를 우리말로 바꾸면 갯민숭달팽이가 된다. 그런데 난 사실 갯민숭달팽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구글에서 해당 단어를 입력하고서야 그 외계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구체화됐다. 참 재밌다.

 

이런 새로운 단어 외에도 기존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단어가 상상도 못한 용법으로 쓰일 때를 만나면 놀라 뒤집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문장에서 brain 이 동사로 쓰였을 때다. 흔히 ‘뇌’라고 알고 있던 이 단어가 동사로 쓰이면 끔찍해진다. 꼴통을 깨부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또 나의 과거 직업과 관련 있는 trucker 도 다른 맥락에서는 채소 농사를 주로 짓는 농부를 뜻한다. 이런 사례가 엄청나게 많다. 끝없이 영어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두 번째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액션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 총싸움을 하다가 play possum 이라는 표현이 나와서 갑자기 맥락이 뚝 끊겼다. 죽은체를 한다는 뜻이다. 또 어떤 소설에선 악당이 주인공에게 play Cassandra를 집어치라고 한다. 점장이 짓을 집어치라는 뜻이다. 이런게 수도 없이 나온다. Press a one's buttons, rain on, make the riffle, lord it over, up a creek, fly off the handle 등등, 연결된 단어만 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데, 관용적으로 단어들과는 전혀 동떨어진 뜻이 된다. 끝없는 영어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세 번째는 문화적인 표현이다.

 

이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말로 ‘이완용 같은 놈’ 하면 큰 욕이 된다. 미국에는 Benedict Arnold 라는 미국 독립 전쟁 시기의 장군이 우리의 이완용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게 특히 어렵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Benedict Arnold 같은놈 이라고 하면 그 누군가는 엄청나게 분노하는데, 나 같은 외국인 독자는 왜 그가 분노하는지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많다. 예를 들어 한국 문학 작품에도 서태지라든가 최불암 등의 유명한 연예인이 언급될 때가 있다. 특히 스티븐 킹의 소설에 미국 역사나 대중문화와 관련된 비유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위키피디아 등을 들춰보며 맥락을 파악해야만 한다. 어렵고 지난한 일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참 재밌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나의 영어 독서는 새로운 영어 표현을 낚는 어부와 같다. 어려운 책을 읽을 땐 vocabulary builder에 700개 가까운 단어와 표현이 쌓일 때도 있다. 하지만 쉬운 책을 읽으면 리뷰하는 단어 수 대비 새로 건져 올린 표현이 줄어들어서 공부해야 할 양이 제로에 근접할 때도 있다. 현재 무라카미 하루키의 Kafka on the shore 막바지를 읽고 있는데 책이 너무나 친절한 영어로 쓰여져 있어서 현재 공부해야 할 표현이 거진 바닥났다. 하지만 걱정 없다. 다음에 읽어야 할 책이 그 유명한 Vladimir Nabokov 의 Lolita 다. 얼마 전에 아마존이 ‘떠돌이 씨, 당신에게만, 오늘만 단돈 0.99 달러에 이 책을 제안할게요,’ 하고 광고 메일이 왔길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샀다. 언뜻 듣기로 이 소설은 천하의 잡놈인 유아성애자가 자신의 죄악을, 한없이 아름다운 영어 문장으로 변명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과연 내가 그렇게나 아름답다는 이 소설의 문장을 즐길 수 있을지 기대된다. 또한 틀림없이 이 소설을 읽어 나가며 나의 vocabulary builder에 공부해야 할 표현이 끝없이 쌓여 갈 것이다.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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