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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_2> 글 : 이호성 (캘거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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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흑백 사진을 연상케 하는 안선생의 낡은 기와집 위로 새벽녘이 트자 안 선생이 종종걸음으로 튀어나오며 다급히 서두른다. 어제 찾고 찾던 수필집을 제자 녀석이 선물로 보내와서 늦게까지 읽은 것이 이 사단을 만들었다. 명세기 교장 체면에 지각을 할 순 없지 않은가?

“여보~~”

바빠 죽겠는데 노부인이 또 말썽이다.

“글쎄 안 된다니까!
그깟 서울이 뭐가 좋다는 겨? 그렇게 좋으면 할멈이나 올라가!”

“애들은 우릴 생각해서 그러는 거 아니우?”

짐작했겠지만 노부인은 아이들 말 대로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 살자고 떼쓰고 있는 중이다. 안선생도 토끼 같은 손주 녀석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서울로 올라 가고 싶지만 같이 산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괜히 자식놈들에게 신세 지고 얹혀 사는 것 같아 마음 내키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아직도 팔팔한 나이에다 마누라 하나쯤 걷어 먹이긴 충분하다고 자부해 왔던 안선생이다. 무엇이 아쉬워서 자식놈들 눈치 보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안선생이 자신의 하얀색 경차에 올라 타며 소리 지른다.

“아, 시끄러! 긴말 허지 말고 당장 큰애헌테 전화 혀! 알았어?”

노부인은 벌에 쏘인 입만큼 삐죽 튀어나와 마땅치 않은 듯 한마디 뱉어 낸다.

“몰러”

앞 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운전대를 잡은 안선생은 노부인의 심술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실 줄곧 시골 학교를 자처한 안선생 때문에 노부인과 아이들도 도시 생활을 하지 못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말끝마다 이제 좀 도시 가서 삽시다… 를 입에 달고 살았던 노부인이었지만 정년을 몇 해 앞 둔 지금까지도 노부인의 작은 소원을 들어주지 못 해 미안한 터였다.

실은, 서울은 아니지만 서울 인근 학교로 발령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정보 아닌 정보를 들은 안선생이라 안 그래도 마음이 싱숭생숭 했는데 노부인의 끈질긴(?) 불만에 발령이 나면 옮기긴 옮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복잡하고 불편한 심기에 안선생은 라디오를 켜 본다. 그러나 이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귀가 찢어 질 것 같은 랩뮤직에 기겁을 하고 스위치를 꺼버렸다. 이내 이게 음악이냐? 나무 자르는 톱니 소리네, 뭐네 구시렁거리던 안선생의 눈에 휘발유가 거덜났다는 빨간 등불이 보인다.

‘우라질, 가뜩이나 늦었는데 이런…’

하는 수 없다. 요즘은 경고등이 들어온 후로도 몇 십 킬로 미터를 더 달릴 수 있다고 하지만은 그대로 달릴 안선생의 성격이 아니다.

차를 몰아 제일 가까운 주유소로 진입했는데 못 보던 사람이 반갑게 다가와 안선생의 차를 맞이하였다.

‘어서 옵쑈~’

소리를 지르더니 주유구를 열어 달라고 뒤 트렁크를 탕탕 후려치는 사내다.
안선생이 놀라 사이드 미러로 사내를 유심히 쳐다보는데 제일 먼저 왼손이 손목 부분부터 잘려 나간 것이 보여 깜짝 놀랐다. 하지만 사내는 뭐가 그리 좋은 지 싱글벙글 안선생의 운전석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넣을까요? 만땅?”

이 순간에도 안선생은 만땅이란 단어가 표준어가 아님을 못 마땅해 하면서 올바른 단어를 꺼내 들었다.

“가득 넣어 주시오”

“오케이~”

그리곤 다시 뒤 트렁크 쪽으로 다가가는데 왼쪽 다리도 불편한지 심하진 않았지만 절뚝거리는 모습이었다.

안 선생은 연신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 쪽 손이 없는 걸 못 느낄 정도로 주유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는 사내를 왠지 모를 흥미로움과 함께 유심히 쳐다보았다.

사내는 나이는 육 십대 중 후반 정도로 보이고 160cm도 될까 말까 한 작달막한 키에 요즘 보기 힘든 하얀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주유기를 주유구에 꽃아 넣곤 잠시 안선생 쪽을 쳐다보던 사내가 안선생을 향해 다가왔다.

“보아허니, 나이도 지긋허이.. 군대는 갔다왔소?”

기분 나쁠 정도로 조목 조목 안 선생의 아래 위를 훑어보는 사내다. 당황한 건 오히려 안선생이다.

“예?”

“음, 뭐 애써 대답 할 껀 없수다! 쪽팔리면 말 안하는 것도 방법이지.
난 말이유. 월남전 때 미제 도락구를 몰았수!
운전석엔 카르빙 소총을 꽂아놓고 말이야!”

상의용사여서 몸이 그리 불편했구나… 한 가지 궁금증이 풀렸지만 그래도 이 원치 않는 대화가 귀찮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예!”

의례적인, 상투적인 안선생의 대답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사내의 자화자찬이 계속 이어졌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지.
그때 파편에 맞은 상처가 아직도 왼쪽 다리에 남아 있다우
손이야 뭐… 보시다시피…”

이때 철컥 소리와 함께 주유기가 멈춰 소리가 들렸다. 다시 절룩거리며 주유기로 다가가 마무리하고 돌아서 소리치는 사내다.

“오만 이 천원이유!”

안선생은 돈을 세어 건네주면서도 학교에 늦을까 봐 계속 대쉬 보드에 박혀 있는 시계를 연신 쳐다보았다. 하지만 사내가 그런 안선생의 사정을 알리 만무하다.

“부동액은 넣었수? 차가 말썽 부리면 나한테 오슈! 내 손봐 줄테니깐!”

“고‥ 고맙습니다. 제가 좀 바빠서…”

“오케이~~출발! 오라이~”

안선생의 차가 얼른 주유소를 빠져나왔다. 도로로 진입하기 전에 슬쩍 룸미러로 뒤를 쳐다보았는데 사내가 아직도 손을 흔들고 있다. 손을 들자니 손들어 작별을 표시 할 만한 사이도 아니고 머쓱하게 룸미러를 향해 조금 목례를 했다가 화들짝 창피함에 얼른 가속기를 밟는 안선생이다.

이것이 안선생과 그의 친구 민경삼이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운명 같다고 말하기엔 뭐랄까… 너무 우중충하다고나 할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기분 나빴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어쨌든 이 친구… 민경삼…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 곳 마을 출신은 아니라 했고…일주일 전에 주유소에 일자리를 청하러 왔는데 마침 숙식을 하며 야간 시간을 봐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던 주유소 사장님이 화장실 옆 조그만 쪽 방을 내주곤 민경삼을 채용했다 한다.

하도 떠들어대서 월남전 참전 용사라는 건 이미 모두 알고 있었고 아들 둘하고 딸이 서울에서 슈퍼마켓을 두 세 개 갖고 있다고 하도 자랑을 해서 주유소 식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퇴근 길에 안선생은 노부인이 좋아하는 순대 한 봉지를 사다가 슬쩍 방문을 열어 밀어 넣고선 물을 받아 발을 씻는다. 발을 씻으면서도 연신 방 안의 분위기를 염탐하는 안선생이다.

아침까지만 해도 노부인의 심통에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또 하루 종일 학교에서 생각해 보니 벌써 자식 집에 얹혀 산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하루에도 두 세 번 이 어려운 결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발을 씻은 안 선생이 미닫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 짐짓 발만 닦는 척하며 노부인을 쳐다보니 노부인은 아랫목에 깍지를 끼고 앉아 나는 심기가 불편하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내밀은 순대는 그대로 있다.
안선생이 못마땅해 한마디 했다.

“밥 안줄꺼야?”

노부인은 입이 퉁퉁 부어 말을 할 수 없다. 안선생이 또 짠해진다. 달래는 줘야 하겠는데…

“이봐 임자! 서울이 그렇게도 좋아?
자고로 자식놈들 신세 안 지고 우리끼리 살 때가 제일 좋은 겨!
아, 우리가 뭐가 모지라? 뭐가 아쉬워서 자식놈들한테 얹혀 사는
냔 말이여? 나, 아직 안 늙었어! 임자하난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단 말이여!”

노부인이 이때다 싶어 돌아 앉으며 퉁퉁 부은 입에 시동을 걸었다.

“아, 누가 밥 굶는댔어요?
애들이 보고 싶으니깐 그렇지….
그러구, 막말로 좀 좋아요? 며느리, 손주새끼 재롱 봐가면서
쉬엄쉬엄 사는 게?”

“시끄러! 그렇게 보고 싶으면 내, 주말마다 내려오라구
당장 전화할 껴! 그람 됐어?”

“오메~ 미쳤어 이 냥반! 애들 직장은 어떻게 하고?”

“그라니깐 잠자코 있어!”

다시 노부인의 입술이 원래대로 퉁퉁 부었다. 안 선생도 마음이 안 좋은 지 담배를 찾아 이리 저리 주머니를 뒤지지만 이내 담배를 끊었다는 것을 깨닫곤 아쉬운 입맛만 다시는 안선생이다. 화해는 해야 저녁밥이라도 얻어먹지 않겠는가? 슬쩍 전에 써먹던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등 좀 긁어!”

역시 노부인은 못 들은 척 한다. 이럴 땐 좀 더 세게 나가야 한다.

“(조금 큰소리로) 등 좀 긁어!”

“에고 깜짝이야~ 등긁개 여깃다 여깃어…
으이구 내 팔자에 무슨 손주 안아 보며 호강 하겠다고…
으이그..”

급기야 노부인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래도 순대 봉지는 들고 나가는 거 보니 완전히 삐진 건 아닌 것 같다.

남들은 늘그막에 시골로 귀농까지 하는 세상이다. 지금 사는 시골 마을이 안선생은 너무 편하고 좋았다. 시골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제법 큰 슈퍼마켓도 있고 있을 만한 편의 시설은 다 갖춰져 있었다. 서울 하고도 그리 멀지 않아 두 시간 조금 넘게 달리면 아들 집에 닿을 수 있다. 지금은 저리 서울 가서 살자 하지만 시골 마을에서만 살던 노부인이 대도시에 가서 편하게 살 수 있겠는가?
몇 달 있으면 공기 안 좋다고 다시 내려가자고 하지…

기사 등록일: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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