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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일기 6) 알고리즘에서 탈출하기

작성자 떠돌이 게시물번호 19367 작성일 2025-11-07 20:44 조회수 76

 

아마존의 알고리즘에 갇혔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 를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이어서 같은 작가의 Kafka on the Shore를 읽고 있다. 작품 속에서 푸치니 오페라를 즐기는 고상한 샴 고양이와 정신 지체를 앓고 있는 60대 노인의 대화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프카의 재림 같다. ‘변신’에서 보여지는 초현실적인 장면이 가득하다. 카프카의 도달할 수 없는 ‘성’ 처럼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에 들어가려면 자신의 그림자를 포기해야만 한다. 느닷없이 주인으로부터 떨어진 그림자와, 그림자의 주인인 ‘나’ 와 나누는 의식에 관한 대화도 재밌다. 남보다 그림자가 흐릿해서 정박아인 노인은 고양이와 유창하게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리처드 도킨스의 저작 몇 권을 사 놨다. 20여년 전에 읽은 것도 있는데 영어판으로 다시 읽어 보기 위해 샀다. 그리고 최근에는 엄청난 득템을 했는데 무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단돈 1.99달러에 산 것이다. 코스모스는 중학생 시절부터 여러 번 읽었다. 여기저기 이사하며 책을 잃어버렸을 땐 중고책방에서 또 사고는 했다. 그런 책을 다시 원서로 구한 것이다. 기대가 된다.

 

위에 언급한 책들은 다 0.99 내지 3.99달러로 샀다. 아마존이 책 광고를 보내 주는데 이렇게 싸게, 나에게만 특가로, 한정된 시간 내에 구매하도록 독촉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산 책들이 킨들에 쌓여만 간다. 그래서 출간된지 좀 오래된 책을, 그리고 예전에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이다. 확실히 아마존은 나의 취향을 알고 있다. 더불어 싸구려만 찾는 놈이라는 것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자존심이 상한다.

 

아마존은 그동안 내가 구매한 책들로부터 나의 취향을 특정한 후, 나에게 거부할 수 없는 특가로 제안한다. 나는 아주 만족하며 이런 책들을 구매해서 읽고 있다.

 

근데 이게 맞나?

 

익숙하고 편안한 장르의 책들만 읽다 보면 다람쥐 쳇바퀴만 도는게 아닌가? 책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과 사상을 만나는 건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독서는 물론 취미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생스러운, 사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훈련이어야 되지 않을까? 마치 기독교의 이원론을 거부하고 동양의 일원론을 기쁘게 받아들이던 과거의 나처럼 말이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에 따르면 알고리즘은 특정 개인 본인보다 더 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휴가지와 액티비티를 선택하고,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책을 읽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레스토랑에 가면 무조건 만족할 수 있다. 내가 그 부분을 읽었을 때, “마크 저커버그 녀석, 광고 팔아 먹으려고 무리수 두고 있네,” 하며 폄하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내가 아마존의 알고리즘에 걸려 있다.

 

알고리즘을 따르면 세상 편안해진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책을 읽으면 재밌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유튜브를 보면 재밌다. 하지만 모든 건 부작용이 있다. 알고리즘이 나를 가둔다. 알고리즘 바깥 세상을 볼 기회를 잃어간다. 알고리즘이 또 다른 무한한 가능성을 빼앗아간다.

 

알고리즘이 패악질을 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은 사람을 편협하게 만든다. 알고리즘은 감옥이다. 탈주를 계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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