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최근 유튜브 채널 박시영 TV 에 출연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증축을 하고 있는줄 알았는데 재건축
을 하고 있더라, 제가 증거가 없는것은 아닌데 실제로 그
렇다는 걸 증명할 수는 없어요 제가 알고는있는데….”
유시민의 이 말에 헛 웃음이 나왔지만, 이성(reason)
을 진리를 찾는 최고의 무기로 활용해 온 한 사람의 데카
르트 주의자로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비평 해본다.
근대 철학의 개척자 데카르트가 그의 저서 <방법서설>에서 확립한 이성과 진
리의 기준을 빌려 이 발언을 들여다보면, 위에서 언급한 유시민의 말은 공적 담론
을 흐리는 전형적인 궤변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시민은 “이해할 수 없으면 알 수 없고, 알려면 원인을 알아야 한다”는
데카르트적 명제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데카르트에게 지식과 앎이란 명석판명
한 인과관계의 파악을 의미한다. 어떤 현상의 본질을 알려면 그것을 발생시킨
객관적 원인을 추적하고, 그 인과적 고리를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시민은 원인과 결과를 잇는 합리적 증명과정은
생략한 채, 오직 자신의 내밀한 앎 만을 주장했다. 이러한
화법은 김어준의 아니면 말고식의 음모론의 화법 그대로
이다. 증명할 수 없는 지식은 앎이 아니며, 인과를 설명하
지 못하는 주장은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스스로 증
명할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도나는 알고 있다고 강변하는
것은 합리적 인과율을 무시한 논리적 파산 선언이며, 사
이비 교주들이 즐겨사용하는 가스라이팅이자 선동에 불
과하다.
둘째, 데카르트는 “진실은 단 하나뿐이므로, 어떤 사람이 사물의 진실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 진실을 알게 된다”고 했다. 산수 규칙에 따라 어린아이가구한 덧셈의 합계가 누구에게나 똑같은 진리이듯, 객관적 진실은 보편적인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달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유시민은 오직 자신에게만 통용되는 닫힌 세계의 언어를 시용하였다. 타인에게 증명해 보일 수 없으면 의심의 대상일 뿐이다. 왜냐하면 타인이 검증할 수 없는 사실은 진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편적 규칙과 객관적 근거를 결여한 주장은사회적 공감을 구하는 정치 평론이 아니라, 대중의 맹목적 믿음에 기댔을 뿐인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유시민이 점점 김어준의 화법과 유사해 지고 있다.
셋째, 이처럼 근거 없이 그럴싸한 수사로 포장된 유시민의 화법은 데카르트가
비판했던 고대 페이건(Pagan)들의 독단적 태도와 소름
돋도록 닮아 있다. 데카르트는 고대 철학자들이 선행을
숭상하면서도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알 수있는 방법론을
가르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그들의 화법이 결국 이해
불가, 자만, 그리고 낙담 만을 남긴다고 비판했다. 유시민
역시 화려한 비유(증축과 재건축, 또는 파브르의 딱정벌
레)로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지만, 정작 그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대중에게 이해불가한 독백을 던지고, 자신만이 진실을
독점하고 있다는 오만한 태도를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
으며, 결국 검증 불가능한 음모론적 시각으로사회적 낙
담과 불신만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인의 책무는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수사학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투명한 논리로 진실을 증
명하는 데 있다. 이것은 과학적 사고의 기본이다.
증명할 수 없으나 나는 알고 있으니 내 말을 믿으라는 태
도는 지성이 아니라 중세 이교도들의 교리나 현대 사이
비 교주들에 가깝다.
이성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주관적 확신은 의심의 대상
이지 결코 진리가 될 수없고, 대중을 기만 선동하는 언어
일 뿐이다.
유시민 선생은 김어준 처럼 증명할 수 없는 주관적 심증
의 언어로 우매한 대중을 선동하려 하지말고, 보편적 이
성과 객관적 사실의 광장으로 나오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