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나스키스 호수를 지나 나는 깊은 숲으로 들어선다. 바위와 뿌리와 흙냄새가 섞인 길, 나무 그림자가 얼룩처럼 드리운 길을 따라 호수 위의 호수 Rawson Lake로 오른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제는 작은 오르막에도 숨이 가빠진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높이 치솟은 침엽수들 사이로 조각난 푸른 하늘, 너무 멀어서 손에 닿지 않고, 너무 맑아서 눈물이 날 것 같은그 하늘을 바라보다가 오래전, 홍천 국도를 따라 걷고 또 걷는 스무살의 나를 만난다. 길을 잃은 방랑자 처럼, 강원도 들판을 따라,
설악산의 능선을 따라,
걷고 또 걸었었다.
옥수수가 익어가는 홍천 들녘
논둑 옆 고개숙인 수숫대에서 날아오르던 고추잠자리, 햇빛 속에서 빛나던 날개는 얼마나 자유로웠던가!
해질녘 미시령에 올랐다.
동해로부터 밀려온 비린 바람이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미시령 바람은 세찼으나 낯설진 않았다.
수많은 계절이 지나고, 기쁨과 후회도 지나갔다.
Rawson Lake 오르는 산길,
숲 사이로 부는바람은
문득 미시령 바람이 되고, 흔들리는 풀잎은
강원도 들녘의 옥수수 잎이 된다.
설악의 하늘과 로키의 하늘, 청춘의 나와 백발의 내가
한 줄기 바람 속에서 조용히 손을 맞잡는다.
마침내 숲이 열리고 Rawson Lake의 푸른 물빛이 나타난다.
저보다 큰 산 그림자를 품은 호수는 한없이 맑고 깊다.
나는 물가에 서서 호수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배낭을 멘 젊은 여행자를 본다.
불안했으나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고,
상처받았으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길을 잃어도 끝내 다시 길을 찾으려 했던 젊은이.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고추잠자리 날갯짓의 자유를 꿈꾸던 마음,
미시령 바람 맞으며 일어설 용기를 얻었던 마음,
그 마음을 간직하며 살리라.
산길은 여전히 굽이치며 이어진다. 나는 다시 배낭을 고쳐 메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미시령 바람을 품고, 로키산맥의 바람을 맞으며,
저 멀리 다가오는 저녁 햇살 속으로.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담담하고도 아름답게
걸어가리라.








